매일신문

[기고] 쌀 소비, 기능성식품으로 해결을

햅쌀 출하가 눈앞에 다가왔지만 쌀 소비량이 줄면서 불어난 재고미 때문에 농업인들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민족의 애환이 서린 배고픈 '보릿고개' 시절이 불과 수십년 전인데 그 좋은 쌀이 그만 애물단지가 되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1970년대 주곡의 자급기반 달성으로 국가경제개발의 초석이 된 업적을 인정받아서 '국가과학기술개발 반세기의 10대 성과' 중 으뜸으로 선정된 '통일벼'. 그것을 시작으로 야심 차게 일궈낸 소비자가 좋아하는 고품질 쌀의 다수확 기술 개발성과는 역설적으로 쌀이 남아도는 세태 앞에서 어쩌면 외면당하는 것 같기도 하다.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작년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75.8㎏으로, 이를 하루 소비량으로 환산하면 207g이니 우리 국민은 하루 2공기 정도의 밥만 먹는 셈이다. 이러한 쌀 소비량의 감소는 식생활의 변화에 따른 육류 섭취의 증가에도 원인이 있지만 빵, 국수, 라면 등 밥 대체식품의 소비 증가가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쌀로 만든 빵, 국수, 라면, 술, 떡볶이, 햇반, 과자, 피자 등의 수요가 늘면서 작년도 가공용 쌀의 소비량이 생산량의 6% 수준인 267천t에 달했다고 한다. 이러한 추세가 다양한 기능성 쌀의 산업화로 이어져 쌀 소비를 조장해 나간다면 농업인의 재고미 걱정은 쉬 풀릴 것으로 기대된다.

때마침 지난 8월 13일 인천 강화읍의 한 쌀국수 생산회사에서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한 이명박 대통령도 쌀의 소비 진작을 위한 쌀 가공산업의 활성화를 강조하였다. 공감되는 부분이다.

만약 소비량이 많은 국수나 라면의 원료를 일부만이라도 수입밀이 아닌 우리 쌀로 대체한다면 재고미의 해결뿐만 아니라, 외화 절감과 함께 쌀산업의 발전을 가져와 일자리 창출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초'중학생 780만명에게 쌀로 만든 국수나 라면으로 월 1회씩 급식한다 해도 연간 9천360t(1회 100g 기준)의 쌀을 소비할 수 있다.

그동안 농촌진흥청에서는 건강기능성 및 가공용 쌀의 개발'보급과 이를 원료로 한 가공식품 개발에 힘써 왔던 것이 사실이다. 굳이 가공식품에 적합한 기능성 쌀 품종을 열거한다면 아밀로스 함량이 높아 쌀국수나 떡볶이용으로 알맞은 '고아미', 유리당 함량이 보통 쌀보다 6.4배 높아 단맛나는 '단미', 술을 빚는 데 적합한 '설갱', 식혜나 떡을 만들면 구수한 향이 나는 '향미'도 있고, 어린이들이 즐겨먹는 피자용으로 식이섬유가 많아 다이어트에 좋은 '고아미2호' 등이 좋은 예다.

또한 최근에 개발된 기능성 쌀 가공식품으로는 청소년의 두뇌활동을 도와 학습능력에 보탬이 되는 GABA(γ-aminobutyric acid) 가 함유된 발아현미, 감귤에서 추출한, 인체의 지방흡수 억제로 비만예방에 좋은 플라보노이드 성분을 쌀에 입힌 '감귤쌀' 등이 있다.

이뿐만 아니라 임산부에게 결핍되기 쉬운 철 아연 등 무기영양소가 강화된 쌀, 인간의 노화억제 및 항암효과가 우수한 레스베라톨을 함유한 쌀 등이 개발 중에 있거나 개발완료 단계에 왔으니, 소비자의 기능성 쌀에 대한 선택의 폭이 그만큼 넓어졌다고 할 수 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농촌진흥청 연구진은 매일 아침밥을 먹는 학생이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수능성적이 더 높다는 사실을 밝혔으며, 당진군의 3개 초등학교에서는 최고 밥맛의 탑라이스로 급식했더니 쌀 소비량이 17% 증가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쌀 소비 문제는 우리 기성세대와 당국의 노력여하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조상들은 "밥이 보약"이란 말로 쌀을 일상생활의 에너지원으로, 건강의 지킴이로, 장수의 비결로 여기면서 그 중요성을 확인해 주었다. 이제부터라도 쌀의 건강기능성에 역점을 두어 소비자가 즐겨찾는 우수한 벼 품종을 개발 보급하고, 품종마다의 제 기능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는 가공산업이 활성화되도록 적극적인 지원과 홍보에 힘써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쌀은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진정한 보약으로 거듭날 것이며, 조국 근대화의 원동력이었던 쌀의 소비도 되살아날 것이다.

황흥구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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