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현씨의 '엄마 찾아 삼만리'
검은색 긴 생머리에 쌍꺼풀 없는 눈. 메이 린 기욘(May Lin Gjøn·34·여)씨의 외모는 영락없는 한국인이었다. 한국명 박지현. 한 살 때 그녀의 삶의 족적은 머나먼 북구의 나라 노르웨이로 옮겨갔다. 타의에 의해 지어진 '입양아'라는 굴레의 시작. 30여년의 세월이 훌쩍 흐른 후 그녀는 잘못 채워진 삶의 첫 단추를 바로잡기 위한 여정에 올랐다. 22일 친부모의 행적을 좇는 기욘씨와 함께 했다.
오전 10시 대구역 주변 한 호텔 로비. 기욘씨가 통역을 도와줄 친구 신영진(38)씨와 모습을 나타냈다. 두 사람의 눈동자는 충혈돼 있다.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단다. 낯설지만 설레는 고향땅에서의 첫날밤을 그냥 보낼 수는 없었을 터. 오늘의 목적지는 서부시외버스정류장과 '삼성의원'. 각각 친부모가 일했다는 곳과 그녀가 출생한 것으로 알려진 병원이다.
오전 11시 20분 서부정류장. 기욘씨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회사 관계자의 도움을 받아 당시 직원명부를 뒤졌다. 그러나 친부모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말 한마디 못 하고 지켜볼 수밖에 없던 그녀는 북받치는 감정에 결국 눈물을 쏟아냈다.
낮 12시 삼각지네거리 주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삼성의원이 있다는 곳을 찾았지만 병원은 없었다. 30여년의 세월은 너무나 길었다. 약국을 들러 수소문 했지만 별다른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오후 2시 북부정류장. 친부가 일했다는 진안고속 사무실을 찾았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지난해 회사 주인이 바뀌었단다. 회사 관계자는 "인사기록 카드는 3, 4년 정도 지나면 폐기한다"고 말했다. 기욘씨의 얼굴에 허탈하면서도 '그럴 것 같았다'는 표정이 언뜻 스쳤다. "오늘은 실패했지만 일단 시도는 해봤잖아요. 이렇게라도 하지 않았다면 평생 후회했을 것 같아요."
만 33년 7개월 만에 진행된 기욘씨의 '엄마 찾아 삼만리'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기욘씨의 친부모에 대한 정보는 다른 해외 입양인에 비해 풍부하다. 부모의 이름은 박이동(1954년생), 이옥선(1955년생). 1975년 당시 서부정류장에서 친부는 기사 조수, 친모는 안내양으로 일했다. 친모는 그해 2월 18일 삼성의원에서 출산했고, 3월 7일 한국기독교 양자회(CAPOK)에 기욘씨를 맡겼다. "아이를 키우기에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말을 남겼다.
기욘씨는 왼손 새끼손가락 끝마디가 바깥으로 굽어 있다. 얼굴엔 점도 많은 편. "당시 부모님들은 가장 좋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해요. 절대 원망하지 않아요."기욘씨는 "단지 친부모가 살아있는지, 형제·자매가 있는지 궁금하다"며 "결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겠다"고 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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