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부](6)의성김씨 사우당 종가 류정숙 여사

"옛것은 지키고 새것 받아들이는 게 도리"

종부를 만나러 가는 길은 언제나 설렘과 기대, 그리고 그들이 않고 살아온 삶의 무게를 지레 짐작이나 하듯 무거운 마음들이 교차한다.

이번주에는 성주군 수륜면 수륜리 윤동마을 사우당 종가를 찾아 의성김씨 사우당 21대 류정숙 종부를 만났다. 사우당 종가는 1794년(정조 18년) 조선중기의 인물인 사우당 김관석(1505~1542)의 후손들이 조상을 받들기 위해 건립했다. 이곳은 요즘 들어 고택체험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다도체험과 민속놀이 익히기, 전통예절 배우기 등 현대인들이 자칫 잊기 쉬운 조상들의 멋과 삶의 향기를 잇고 가르치고 있다.

◆의성김씨 재실 가운데 정갈함 으뜸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윤동마을로 향했다. 성주에서 33번 국도를 따라 고령 방향으로 가다가 성주군 수륜면소재지를 지나 약 1km 정도를 달려 윤동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오른쪽에는 윤동(倫洞)이라고 새겨진 큰 바위가 서 있고 대가천을 건너 마을로 들어서는 다리, '윤동교'가 보인다. 다리 입구 양옆에는 돌장승이 서 있어 여느 마을과는 다른 분위기다.

다리를 건너 한눈으로 마을을 볼 수 있다. 마을 뒤 대나무 숲과 많은 기와집들이 반촌(班村)임을 증명하듯 길게 들어서 있다. 사우당 종가는 입구에서부터 산 아래까지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안채를 왼쪽으로 돌아 들어가면 약간 오르막을 지나 사우당(四友堂) 건물이 있다. 그 앞뜰에는 400여년이나 된 우물이 있다. 새로이 단장하여 영천녹죽(靈泉綠竹)이라는 현판을 걸어 두었다. 사우당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새롭게 단장된 것이었으나, 건물마다 마루나 처마 아래에 민속품들을 가져다 놓아 고풍스럽게 보였다.

◆ 옛것 잊지 말라는 '온고이지신'

"사진을 찍으려면 옷을 갈아입어야겠지요?"

첫 만남의 짧은 대화였지만 정갈하게 가꿔진 사우당만큼이나 깔끔하고 빈틈없어 보이는 종부의 품위와 성품이 느껴지는 듯하다. 잠깐의 대화와 다과를 겸한 자리에서 '예절다도교육회', '고택문화보존회' 등 종부가 가지고 있는 직함은 차치하고라도 상황에 따른 외적인 예절과 대화 때의 화사한 눈웃음, 그리고 남을 위한 배려와 절도 있는 생활예절에서 흘러나오는 접빈객의 품위를 읽을 수가 있었다.

자녀교육에 대해 종부는 "나는 해준 것도 없는데 애들이 잘 따라와 줘 내가 고맙지요. 지금은 손자들 교육 때문에 대구에 나가 있지만 주말마다 들어와 나를 도와주고 뭔가를 배우려고 하는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라는 말 속에 자녀 사랑이 물씬 묻어 있다. 2남 1녀의 자식들 중 아들들은 형제 우애를 살려 건설업을 같이 한다.

자녀교육의 기본은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으로 삼고 있다. 자식들과 손자들에게 옛것은 지키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라고 한다.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통을 지켜야 하는 이유와 도리를 설명하며 지킬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종손이 지어준 '종부의 길' 가사

종부는 사우당을 개방하면서 외부에 알려지는 것이 단순한 음식기행이나 스쳐 지나는 문중, 고택알기가 아닌 문화 의식주를 알고 관혼상제나 다도 예절을 포함한 격조 높고 품위 있는 프로그램 위주의 체험이 됐으면 한다.

이런 전통을 지키려는 종부는 "경북에서 세 차례에 걸친 성인식을 주관했어요. 친정인 하회마을과 사우당, 포항에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인 덕실마을에서요"라고 한다.

또 "한 남자를 믿고 시집 와 친정부모의 임종도 지켜주지 못하고 제사 때 가지도 못하니 어찌 다 말로 하겠어요". 잠시 침묵이 흐른다. 35년여 세월 종부와 유교적 삶을 요구받은 여성으로서의 삶이 얼마나 고단하고 힘들었는지를 짐작게 한다. "혹시 살아계셨으면 아마 '애야, 너도 참 열심히 산다'라고 말씀하지 않았겠어요?"라며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과 죄스러움을 나타낸다.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종부는 종이 한장을 꺼내 보인다. 종손 김기태씨가 도의원 임기가 끝나고 "고생만 시킨 당신에게 미안한 마음이 늘 있었는데 달리 할 말은 없고 보상 아닌 보상이 됐으면 좋겠다"며 준 것이라 한다.

남편이 직접 지은 '종부의 길'이란 가사다. '꽃다운 스무 살에 종부가 되어/ 육백년 내려온 종가 집 예법에 따라/ 조상님께 누가될까 이 가문에 폐가 될까/ 숙명처럼 살아온 종부의 길/ 하늘이 내 맘 알고 땅이나 알지/ 이 가슴 태운 속을 그 누가 아리요/ 몸가짐 언행하나 조심하면서/ 꽃처럼 곱던 얼굴 백발이 다 되도록/ 외로워도 말 못하고 괴로워도 참아내며/ 오직 한 길 지켜온 종부의 길/ 하늘이 내 맘 알고 땅이나 알지/ 한만은 그 사연을 그 누가 아리요.'

◆종부의 삶은 옛것 지키고 가꾸는 일

종부는 "종부들은 전통문화 지킴이로서의 자부심이 있어요. 하지만 작금의 현실은 내가 누구인가 회의가 들 정도"라며 "뒤돌아서면 자라있는 풀 뽑기가 어려운 일 중의 하나"라며 종가살림의 어려움을 단편적으로 얘기했다. 다례를 실천하며 전통을 지키고 가꾸기 위해 몇 해 전부터는 기제사나 명절에 차를 대접하기도 하고 조금씩 변화를 시도하지만 기준이 틀어지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종부는 종가를 우리문화전통체험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전통예절과 다도, 그리고 전통염색 등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수많은 민속품들이 있는 이유도 바로 이곳이 우리문화 체험장이기 때문이다.

종부에게서 사우당 뒤 대나무 숲속에 있는 동굴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이 동굴은 한국전쟁 당시 덕천서원에 보관된 책 6천여권을 숨겨 둔 곳이라고 했다. 대나무로 우거진 숲에 이 동굴을 파고 책을 옮겨와 보관했다. 마을사람 모두가 피란을 갔으나 종손과 종부는 이 책과 함께 이 동굴에서 숨어 지냈다고 했다.

지금은 대나무를 베어내고 동굴로 가는 길을 만들었으나, 그 당시에는 대나무 숲으로 우거져 있어 바깥에서는 알 수가 없었다고 했다. 옛것을 지키고 보전하지만 새것을 받아들임에 있어서는 과제를 풀어가는 심정으로 신중을 기하며, 받아들였으면 일부로 느끼고 소중히 여긴다고 말씀하시는 미소 속에 한 여인의 강인함을 읽을 수 있었다.

(사)안동문화를가꾸는사람들 강병두 plmnb12@hanmail.net

안동'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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