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에 뛰어든 안중근 의사의 일가족은 무려 40여명에 이른다. 정부로부터 최고 훈장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은 인물만 11명이다. 독립운동의 최고 명가다. 직계가족뿐만 아니라 사촌들도 대거 망명해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천주교 집안이어서 좌익과는 선을 긋고 대부분 임시정부에서 활동했다.
안 의사의 유언을 받았던 두 동생인 정근, 공근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정근은 상해 임시정부 시절 내무차장과 대한적십자회 최고책임자를 지냈지만 1924년 뇌병이 발발해 병석에서 지내다가 1949년 중국땅에서 사망했다. 정근의 차녀 미생은 백범의 비서를 하다 큰며느리가 됐다.
공근은 러시아에서 비밀결사 활동에 가담해 청산리 전투에 무기와 자금을 공급했다. 그 후 임시정부 최초의 러시아대사 겸 외무차장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50세 때인 1939년 백범의 신임을 잃은 직후 중경에서 실종됐다. 독립운동단체 내부의 분파투쟁에서 희생되었다는 설과 일제 밀정에 암살됐다는 설이 있다.
사촌 명근은 조선총독을 암살하려던 '105인 사건'을 주동했고 사촌인 경근 역시 임시정부 군사위원으로 활동했다. 그 외에 조카 춘생, 봉생, 원생, 낙생, 안명근의 매제 최익형, 안춘생의 부인 조순옥이 있다. 해방 후 안중근 일족 중 빛을 본 인물은 안춘생(97)씨 정도이다. 그는 중국군 소령, 광복군 구대장을 지냈고 귀국해 육군사관학교장, 국방부 차관보, 초대 독립기념관장을 거쳤다.
'한국과 이토 히로부미'의 편저자 이성환 계명대 일본학과 교수는 "안 의사 집안에 독립운동가가 많은 것은 일찌감치 개화사상과 천주교를 받아들인 열린 가풍 때문"이라며 "양반 집안인데도 무(武)를 천시하지 않은 분위기도 한몫한 것 같다"고 했다.
박병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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