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주목되는 일본의 탈관료 정치

새로 출범한 일본 민주당의 하토야마 유키오 정권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국내외적으로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8월 말에 있었던 일본 중의원 선거 당시부터 일본 민주당은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민주당은 오랫동안 일본 정치 무대를 지배해 왔던 자민당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정치 신인들을 대거 선거에 투입했다. 그 결과 일본 국민들의 정권 교체 욕구와 그대로 맞아떨어져 구시대 정치인을 상징하는 자민당의 원로들이 대거 낙선한 가운데 민주당이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 속에서 정권을 인수한 하토야마 총리의 갈 길은 험난해 보인다. 대내적으로 하토야마 총리의 우애정치 철학을 실현하기 위한 국민복지 정책은 당장 재원 확보에 어려움에 봉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과의 관계 재설정을 추구하는 대외 정책 역시 곳곳에서 장애물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토야마 내각이 추구하고자 하는 정치 개혁은 몇 가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무엇보다 탈 관료 정치의 모색은 의미 있는 정치 실험이 될 것이다. 그동안 일본의 지배체제에서, 특히 자민당의 장기집권체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이 관료 정치이다. 하토야마 총리는 정치가가 국정을 주도하면서 관료를 이끌어감으로써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탈 관료 정치를 내세웠다.

일본 근대국가 형성의 출발점이었던 메이지 유신 이래 관료제 조직은 일본 지배체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다.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취해 왔지만 사회적 의사결정의 민주성을 포함한 정치체제의 민주성에서 일본은 낙후된 모습을 보여왔다. 경제 수준에 걸맞지 않은 정치 수준은 대내적으로 정치인과 국민들 사이에 메울 수 없는 괴리를 낳았다. 이러한 일본의 정치적 후진성의 배후에는 관료제 조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정치가 행정체제를 통제하여 정권의 정치철학을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 관료가 국가의 정책결정을 사실상 지배하는 체제에서는 민의의 수렴과 반영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힘들었다. 국민 중심의 정치가 아니라 관료 중심의 정치는 국민들의 일상적인 삶으로부터 정치를 멀어지게 함으로써 정치 불신을 낳게 되었던 것이다.

하토야마 총리는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국민들의 정치 불신이 정책과 예산, 인사 영역에서의 관료들의 지배와 전횡에 근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한 탈 관료 정치를 위해 하토야마 총리는 우선 사무차관 회의를 폐지했다. 일본 관료정치의 중심에는 100년 이상 지속되어 온 내각 사무차관 회의가 있었다. 정치인 출신의 각료가 각료회의의 안건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무차관 회의가 각료회의의 안건을 결정해 온 것이 일본 사회의 현실이다. 하토야마 총리는 또 관료가 정부 부처의 견해를 밝히는 기자회견을 할 수 없도록 조치했다. 정책 판단과 결정의 중심이 관료가 아니라 정치가임을 분명하게 밝힌 셈이다. 이와 함께 관료가 정치인이나 국회의원에게 접근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러한 조치들은 하토야마 정권의 정책 결정에서 관료의 역할과 비중을 대폭 줄이고 정치가의 권한과 책임을 높이게 될 것이다.

그동안 일본의 내각책임제 하에서는 정권이 바뀌어도 국가정책 방향과 내용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 경우가 거의 없었다. 이는 자민당 일당 지배체제가 오랫동안 지속된 데다가 직업 관료가 일본의 정치 중심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탈 관료 정치의 추구는 정치가가 중심이 되어 국가정책을 결정함으로써 국가정책과 국민들이 바라는 것 사이의 격차를 줄이고자 하는 것이다. 국민이 특정 정치세력에 정권을 위탁했을 때 기대하는 바가 제대로 수용되고 실현되는 것이야말로 민주정치의 기본 이념과 부합하는 것이다. 하토야마 총리의 탈 관료 정치 추구는 일본 정치의 정상화를 모색하는 동시에 진정한 의미의 민주정치를 실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되는 정치 실험인 것이다. 동시에 형식적 민주화를 넘어 실질적 민주화를 추구해야 하는 한국 정치 지형에도 새로운 시사점을 던져 줄 것으로 기대된다.

백승대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