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네'를 일본말로 직역하면'하이(はい)'라는 뜻이 된다. 그런데 정작 일본어의 '네(ね)'는'하이'라는 뜻이 아니고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는 보충어로 우리말의'응'과 같은 용도로 쓰인다. 예를 들어 '그게 좋지. 응'을 일본어로는 '소레가 이이, 네' 라고 하는데, 여기서'네'와'응'은 같은 뜻이다.
일본에서 지내다 보면 일본인들이 이'네'를 의외로 많이 사용하는 것을 보는데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하지만 점차 이것이 일본인들의 '중요한 의식구조'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냥 하고 싶은 말을 생각나는 대로 막 하지만 일본사람들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조금 말하고 나서 상대방이 맞장구인 '네'를 해오지 않으면 반드시 상대방의 안색을 살피며 '그렇지'하는 동의를 구하는 이 '네'를 걸어오는 것이다. 이것은 다음 말을 더 진행해도 좋은지 어떤지의 여부를 확인하는 말이다. 이 때 상대방이 '네'라고 톤을 약간 올리면 '그래, 네 말이 맞다'라는 것으로 '계속해' 라는 뜻이 되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으면 그냥 거기서부터 흐지부지 마무리짓고 만다.
물론 우리도 이 '네' 같은 뜻의 '응' 이란 동조어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너무 자주 쓰면 어린애 같아 보이고 또 가벼운 사람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이따금씩 특별한 장면에서만 맞장구로 쓰인다. 그런데 어째서 일본은 간사스러울 정도로 이렇게 '네'를 연발하는가?
아주 심한 경우는 여자들끼리 만나서 그냥 '네, 네' 만으로 높낮이만 조절하면서 말의 전후좌우를 생략하고 대화를 이어나간다. 옆에서 들으면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는 몰라도 둘은 말 안해도 다 아는 일이라 이심전심으로 그렇게 통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 '네, 네'는 어디서 나온 말일까? 이 말은 야요이(彌生)시대부터의 고대 언어로 도래 농경문화를 배우던 원주민들의 습성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농작물의 씨뿌리기에서 거두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배우면서 그때마다 '이렇게 하는게 맞죠, 네' '그렇죠, 네' 하고 동의를 구하던 말로써 이것이 앞의 말들은 생략되고 '네'라고 한 것이 점차 고착화된 것이다.
매사에 자신의 뜻보다는 상대방의 뜻을 여쭈어 살피는 이 습관은 지배자에 대한 피지배자의 일상생활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라 보는데 그러면 어째서 같은 뜻의 '응'이란 한국말을 쓰지 않고 이 '네' 라는 말로 그 용도를 대신하였을까? 그 답은 간단하다.
그것은 '응'이란 말은 같은 동의어일지라도 상대가 자기보다 낮거나 또는 같을 때 쓰는 말로 당시 원주민들이 도래인들에게 '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존경어인 '네'로 대체된 것이라 본다.
경일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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