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직은 고통스럽다. 드러내놓고 말하기도 창피하다. 경기 침체의 여파가 길어지면서 주변 곳곳에 실업자들이 설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사회 안전망이 필요한 이유다. 한 부부 실업자의 삶을 들여다봤다.
박원섭(45)·이명숙(36) 부부는 실직 상태다. 사실 전에도 뚜렷한 직업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박씨는 최근 대구직업전문학교의'비정규직 건설근로자 취업능력향상 프로그램' 교육을 받았다. 미장과 타일 과정을 모두 수료했다. 그러나 아직도 취업을 하지 못했다. 고교를 졸업하고 20대 초반부터 15년 가까이 1t 트럭을 운전하며 농수산물을 판매했다. 젊었을 때는 돈도 조금 벌었다.
그러나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생활에 익숙했던 박씨는 "저축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고 말했다.
아내와 아들과 그럭저럭 살만했다. 그러다가 1997년 외환위기 한파가 불어 닥치면서 박씨의 삶도 쪼그라들었다. 하루 종일 차를 몰고 다녀봐야 기름값을 제하면 손에 남는 것이 없었다. 그때부터 모아 둔 돈을 까먹는 데 익숙해져 갔다. 그러다가 급기야 2여년 전부터 트럭 노점상을 완전히 접었다. 점심값을 아끼려고 도시락까지 사들고 다녔지만 손에 쥐는 것은 고작 1, 2만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후 한 직업전문학교에서 6개월 과정의 헤어디자인 교육을 배웠지만 자격증도 못 따고 그만뒀다.
"시골에서 조그마한 미용실을 차려 밥이나 먹고 살려고 배웠지만 여의치 못했다"고 말했다. 급기야 오른쪽 팔에 관절염 증상이 나타나 무거운 짐을 들기도 어려웠다.
이후 7월 대구직업전문학교에서'비정규직 건설근로자 취업능력향상 프로그램'을 알게 됐다. 10대 후반에 건설 현장에서 타일 공사 보조를 했던 기억을 살려 타일과 미장 과정에 등록했다.
부인 이씨도 함께 등록했다. 다소 장애가 있는 이씨는 남편 박씨가 트럭 노점상을 할 때도 항상 옆자리를 지켰다.
박씨는 "부부가 함께 다니니까 술도 적게 먹고, 돈 낭비도 적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20일 과정을 모두 수료했지만 아직도 직업을 구하지 못했다. 건설 경기가 바닥이라 일용직 일자리도 구하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박씨는 "정기예금 400만원가량이 재산의 전부다. 이 생활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 밥만 먹고 집에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타일 작업 기술을 더 배우고 싶다. 기술을 배워 조그마한 타일 가게를 차리고 싶은 것이 꿈이다.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최근 한 직업전문학교에서 무료로 강의하는 인터넷 쇼핑몰 과정에 등록했다. 타일 작업 기술을 어느 정도 익히면 홈페이지를 만들어 홍보를 하겠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한 명뿐인 아들(15세)을 생각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한다"며 쓸쓸하게 돌아섰다.
이창환기자 lc156@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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