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로만 폴란스키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76)의 이름에는 늘 2명의 여성이 망령처럼 따라다닌다. 영화배우이자 첫 부인인 샤론 테이트와 모델이었지만 지금은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사만다 가이머이다.

테이트는 1969년 8월 몇몇 친구들과 함께 자신의 집에서 맨슨 패밀리(희대의 살인마 찰스 맨슨을 신봉하는 교도)에 의해 살해됐다. 이 끔찍한 살인 사건은 착각에 의한 것이었다. 맨슨 패밀리는 맨슨에게 비우호적인 음반 제작자를 살해하기 위해 집에 침입했다. 그러나 음반 제작자는 이미 이사를 하고, 폴란스키 부부가 살고 있었다. 당시 폴란스키는 유럽을 방문 중이어서 화를 피했다. 가이머는 아직도 폴란스키의 발목을 잡고 있다. 폴란스키는 1977년 배우 잭 니컬슨의 집에서 당시 13세인 가이머를 성폭행했다. 체포된 폴란스키는 재판 도중 유럽으로 도망갔다. 2002년에는 '피아니스트'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했으나 식장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도피 생활 32년 만인 지난 26일, 폴란스키는 스위스 취리히 공항에서 체포됐다. 취리히 영화제의 공로상을 받기 위해 입국한 참이었다. 미국은 스위스에 신병 인도를 요구했고, 프랑스와 폴란드는 즉각 그의 석방을 촉구해 세 나라 사이에 미묘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폴란스키는 프랑스에서 폴란드계 유대인인 아버지와 러시아 이민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양국 국적을 모두 갖고 있다.

미테랑 프랑스 문화부 장관은 "폴란스키가 고대의 과거사 때문에 느닷없이 사자 굴에 던져졌다"고 했고, 프랑스와 폴란드 외교부 장관은 함께 특별사면을 요구하는 편지를 미국에 보냈다. 하지만, 미국은 쉽사리 들어줄 것 같지 않다. 그 근거는 법 앞에서의 만인 평등이다.

폴란스키는 대표적인 오컬트 영화인 '로즈메리의 아기'(68)와 필름 누아르를 부활시킨 '차이나 타운'(74)으로 거장 반열에 올랐다. '테스'(79)에서는 18세인 나스타샤 킨스키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뭇 남성의 연인으로 부각시켰고, '비터문'(92)에서는 다소 무명이던 휴 그랜트를 발굴해 내기도 했다.

이번 사건이 어떻게 결말 나든 여론은 미국 편인 것 같다. 프랑스 국민조차 한 여론 조사에서 70.7%가 처벌 쪽에 무게를 실었다. 미성년자를 성폭행한 파렴치범은 공소시효도 없이 추적해 처벌해야 한다는 원칙이 무너지면 안 된다는 뜻일 것이다.

정지화 논설위원 akfmcp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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