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가에 가면 '진정한 리더는 떠난 후에 아름답다'(원제 Beyond the White House)란 책이 꽂혀 있다. 지미 카터 제39대 미국 대통령이 쓴 책이다.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참 흥미롭다. 땅콩 농장 농부 출신인 그는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 시절 그는 중국과의 국교 정상화, 소련과의 제2차 전략무기제한협정(SALT)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재임 시절 그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지 않았다. 카터가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은 퇴임 후다. 우리나라의 남북 문제를 비롯한 수많은 지구촌 분쟁에 개입해 평화를 조성했다. 해비타트 운동(Habitat for Humanity)에 참여하는 등 지구촌의 가난 퇴치에 앞장섰다. 스웨덴 왕립아카데미는 이런 그에게 미국 대통령을 그만둔 지 21년이 지나 노벨평화상을 줬다. 호사가(好事家)들은 '신은 카터를 성공한 전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실패한 현직 대통령으로 만들었다'고 갈파(喝破)했다.
역시 미국 대통령을 지낸 빌 클린턴(63)은 지난달 상쾌한 뉴스를 지구촌에 전했다. 평양으로 날아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모르지만 그는 며칠 뒤 억류됐던 여기자 2명과 함께 로스앤젤레스 밥호프공항에 도착했다. 서부 사나이 '돌아온 장고' 처럼 멋진 모습이었다. 자신의 비서였던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스캔들 이미지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남편이란 한계를 벗어던지는 순간이었다.
카터나 클린턴처럼 퇴임 후 더 아름다운 사람은 대구에도 있다. 전임 미국 대통령과 비교의 격이 맞지 않지만 조해녕 전 대구시장이 바로 그다. 대구시장 재임 시절 그는 지금의 낙동강 살리기 사업의 원안이라 할 수 있는 낙동강프로젝트를 만들었다. 대구가 강을 낀 도시여야 국제 도시가 될 수 있다며 대구와 고령'성주 등지의 통합을 주창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2003년 2월에 터진 지하철 화재 참사로 기력을 잃었다. 누구 하나 '성공한 대구시장'이란 평가를 하지 않았다.
주위의 차가운 시선에도 아랑곳않고 그는 퇴임 후 대구를 떠나지 않았다. 너도나도 서울로 가버린 다른 전임 시장과 달랐다. 후배 공무원들을 만나 혹독하게 채찍질하고, 대구의 현안을 서울 요로에 건의하는 역할도 마다 않았다. 이런 그에게 대구시는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조직위원장을 맡겼다. 대구를 걱정하며 조용히 어른다운 행보를 하는 그를 후배 공무원들이 '어른 대접'을 한 것이다. 조 전 시장은 조직위원장으로서 잡음이 있던 조직위를 안정시켰고, 대회 성공을 위해 뛰고 있다. 많은 후배 공무원들은 존경하는 선배로 그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한다.
홍철(64) 대구경북연구원장은 공무원들을 야단치는 모습이 조 전 시장을 닮았다. 단구(短軀)의 그는 늘 대구경북의 장래를 생각한다. 허울(?)뿐이란 평가를 듣던 대구경북연구원을 반석 위에 올려 놓았다. 그래서 눈물이 쏙 빠지도록 꾸중을 들어도 후배들이 섭섭해하지 않는다 한다. 그의 소원 가운데 하나라던 첨단의료복합단지 대구 유치도 성공했다. 대구경북연구원장을 그만두면 부인과 단둘이 살겠다며 문경의 아담한 집을 물색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퇴임 후 백발을 휘날리며 대구에 가끔 나타나 후배들을 꾸중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필자는 조 전 시장이 퇴임할 즈음 서울로 가지 말고 고향을 지키며 어른이 돼야 한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조 전 시장이 그 글을 읽고 그렇게 결정했을리는 없지만 정말 대구를 지켰고 어른이 됐다. 또 다른 어른인 홍 원장이 대구 서울을 마다않고 새카만 후배와 격의없이 소줏잔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 즐겁다.
외지에서 돈을 벌어 고향에 투자하고 장학사업을 벌이고 있는 권영호(68) 인터불고회장도 어른으로 존경받기에 충분하다. 권 회장은 지난해 시가 200억원 상당의 땅을 계명대에 아무런 조건없이 쾌척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정작 자신은 소형승용차를 타고 다닌다.
존경할 수 있는 어른이 있다는 것은 대구경북의 행운이다. 어른을 대접하는 지역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은 분외(分外)의 다행이다. 제4, 제5의 어른이 나타나야 하고, 또 지역 사회가 그렇게 만들어 가야 한다.
최재왕 정경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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