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송재학의 시와 함께] 易/ 박미영

죽은 새 덮어둔 기왓장 들췄더니 하얗게 구더기 슬어 있었습니다 꿈틀꿈틀 새 가슴 아래 날갯죽지 아래 퀭한 눈알 그 아래, 노숙하는 당신 누워 있었습니다 딱딱한 기왓장이불 덮고 죽은 새 아래 다리 쭈욱 펴고 누워 있었습니다 여기 계셨군요! 왈칵 무릎 꺾으며 형제들 오열했습니다 괜찮다 나는, 죽은 새 몸에 뿌리내린 달개비꽃 이슬 톡 떨어졌습니다 하얀 구더기 위로 톡 떨어졌습니다 죽은 새 덮어둔 기왓장 들췄더니 안방에서 한잠 잔 듯 기지개 켜며 당신 거기 있었습니다

노숙자의 몸을 덮은 여러 상징과 물질들이 잘 뒤범벅되어 있습니다. 그 뒤범벅이 감동을 주는 것은 현실 위에서 오래 숙성, 발효되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노숙의 끔찍함을 위해 죽은 새와 구더기 등이 등장합니다. 그들을 더욱 무겁게 하기 위해 기왓장 이불이 나옵니다. 기왓장을 잘 살펴봐주십시오. 우선 그것은 딱딱하고 무거운, 따뜻하고 부드러운 이불과는 거리가 먼 물질입니다. 하지만 노숙자에게 기왓장 이불도 사치에 가깝습니다. 아니면 집이 아닌 곳에서의 잠이란 필연적으로 기왓장 이불을 덮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은 사족일까요. 죽은 새는 무엇인가요. 실제로 죽은 새가 노숙자 옆에 있었는가 하는 것은 중요치 않습니다. 노숙자의 무거운 잠을 표현하기 위해 등장시킨 소도구입니다. 가장 깊고 무거운 잠이야말로 죽음이 아닐까요. 그 강렬한 주검/잠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새의 묘사가 나왔던 것입니다. 구더기는 또 무엇입니까. 몸서리쳐지는 상황의 엽기성이겠지요. 하지만 라는 마지막 언술을 보면 시인은 노숙자에게 절망을 본 것이 아니라 희망의 끄나풀을 먼저 보았는데 고개 끄덕이고 싶습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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