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 고향이 그리워도

올 추석 연휴 귀성객 수가 2천500만 명을 넘을 것이란다. 지금 이 시간도 귀성길 교통 정체의 그 혼잡은 다른 때와 다르지 않으리라. 그러나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은 하나같이 들떠 있을 터. 얼마나 가슴 설레며 기다려온 귀성길인가.

추석 등 명절 때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을 귀성객이라고 한다. 귀성길, 귀성열차. 귀향은 단순히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돌아옴을 뜻하지만 귀성이라고 할 때는 객지에 있던 사람이 고향에 돌아가 어버이께 문안을 드린다는 뜻이 그 말 속에 담겨 있다.

성묘(省墓), 귀성(歸省)이란 말에서 성(省) 자의 우리 본딧말 새김은 '살피다' 혹은 '깨닫다'이다. 산소나 고향을 찾아가 그 동안 잊고 산 조상의 은혜나 자기 근원을 깨닫게 된다는 뜻이다.

수구초심, 여우도 죽을 때엔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둔다고, 객지에 나가 살던 사람들은 평생을 두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게 마련이다. 고향이 따로 있나, 정 들면 거기가 고향이지. 고향 그리움이 얼마나 절실하면 이런 체념의 반어법이 나왔겠는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인간의 감성 중 가장 순수하고 고결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것은 객지 생활을 통해 잃어버린 그 어떤 것을 되찾고 싶은 바람이며 부도덕하게 오염된 자신의 현실에 대한 회의와 더불어 찾아온 반성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도시적 삶에서 피폐해진 가슴을 치유하고 충전받기 위해 고향을 찾는다. 실추된 아버지의 권위도, 잊고 사는 자기 뿌리 찾기도, 객지 생활의 외로움도, 찌든 삶의 고달픔도 고향에 돌아가면 다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 고향은 모든 것을 감싸 안고 다독여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시키는 무한량의 산소 탱크이기 때문이다.

이 시간 길 위의 귀성 행렬을 바라보며 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있다. 고향이 그리워도 찾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다. 먼 이국에서 오직 모국어 하나만을 잊지 않은 채 희미해져 가는 고향 추억을 더듬고 있는 해외동포들의 추석맞이 긴 한숨소리를 듣는다. 자식 따라 이민 떠날 때 고향의 흙 한 삽을 떠갔다는 그 노인네가 쳐다보는 추석 보름달은 어떠할까.

고향이 그리워도 갈 수 없는 또 다른 사람들을 생각한다. 다문화 시대, 낯선 땅에 이제 막 뿌리를 내려 살기 시작한 결혼 이민자 또는 새터민(탈북자)들에게 고향의 의미는 더욱 남다를 것이다.

가슴 저미는 타향살이 서러움으로 먼 하늘을 무연히 바라보는 얼굴들이 또 있다. 고향 떠난 지 몇 년 되도록 돌아가지 못한 채 열악한 근로환경에서도 이를 악물고 사는 우리의 산업현장 외국인 근로자들이다. 그네들이 이 나라 연휴 중에 컨테이너 속에 엎드려 보고 싶은 고향 부모형제에게 쓰고 있을 편지 내용이 궁금하다

며칠 전 금강산에서 있었던 남북이산가족 상봉 장면이야말로 실향민들의 한과 아픔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다잡아 보여준 것이다. 남쪽의 아버지와 북쪽의 아들이 육십 년 만에 맞잡고 흔들던 그 손의 떨림, 이런 경우가 어디 있단 말인가. 고향을 지척에 두고도 도대체 무엇 때문에 왜, 그 고향 땅을 밟을 수도, 거기 아직 살아 있는 혈육을 만날 수 없단 말인가.

남북이 마지못해 선심 쓰듯, 이벤트로 벌이고 있는 그 제한된 숫자의 감질나는 남북이산 가족상봉이야말로 아직도 이 땅에 살아 있는 200만 실향민들의 아물지 않은 상처를 들쑤셔놓을 뿐이다. 고복수의 '타향살이'를 비롯한 추억의 고향 노래가 아직도 구구절절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것도 남북 실향민들의 '꿈에 본 내 고향' 의 내 부모 내 형제를 언제 만날 수 있느냔 그 한 맺힌 절규가 끝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 시간 고향이 있어 고향 가는 사람들이 아닌,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꿈에 본 고향만 마냥 그리워 눈물짓고 사는 남북 실향민들이 마음 간절히 바라고 있는, 뉴스 한 토막을 미리 머릿속에 그려본다.

기적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잘못 꼬인 매듭 싹둑 잘라내기, 우리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그것을 염원한다면 안 될 것도 없다. 죽은 사람도 눈을 뜰, 긴급뉴스!

- 남북 당국은 통일에 앞서 '고향이 있어도 못 가는 신세'란 애절한 유행가 가사가 누구의 입에도 오르지 않을, 기간을 일 년에서 무기한으로 하는 획기적인 방안을 민족의 큰 명절인 이번 한가위를 즈음해 발표할 예정이다.

이제 그럴 때가 아니냔 것을 우리의 동질, 그 근원을 찾아가는 추석 귀성길에서 함께 얘기 나누자.

전상국 소설가.강원대 국문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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