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여년 전의 약속을 올 해도 지킬 수 있어서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4일 오전 울진군 평해읍 오곡2리 저수지 옆 길가.
줄 잡아 일흔이 넘어 보이는 고령의 마을 주민 20여명이 '비량동 무후묘 합동제단(飛良洞無后墓合同祭壇)' 앞에서 정성껏 제사를 모시고 있었다. 이 제단은 1992년 4월 만들어진 것으로 조선 중엽부터 말엽까지 이 마을에서 살다 자식없이 돌아가신 연고없는 열 분을 모시고 있다.
후손이 없었던 이들은 '사후(死後) 묘소에 풀을 베주고 술이라도 한 잔 올려달라'며 자신들의 재산을 마을에 내놓으며 부탁했고 마을 주민들은 그 약속을 지금껏 지켜오고 있다는 게 원로인 나두인(80) 전 평해조합장의 설명이다.
예전에는 추석 다음 날 마을 주민들이 10여명씩 조를 편성해 벌초를 했지만 젊은이들이 떠나고 노인들만 남게 되면서 1992년 제단을 만들었다.
주민들은 "묘지들이 모두 멀리 떨어진 높은 산에 있어 벌초가 힘들어지면서 마을 회의를 거쳐 제단을 만들어 합동 제례를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올 해도 이장인 황인학씨가 제주가 돼 음식을 장만했다.
나두인 전 조합장은 "350여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도 옛 어른들과의 약속을 지켜오고 있는 것은 마을의 자랑"이라면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약속이 지켜지길 고대한다"고 했다.
오곡 2리는 신라 진흥왕 이전에 마을이 생겨 비량현(飛良縣)의 소재지가 됐으며 현재 76가구 100여명이 살고 있다.
울진·황이주기자 ijhw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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