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한글의 세계화를 위해

한글은 세계 문자 가운데 가장 적은 숫자로 가장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는 우수한 문자다. 24개 부호의 조합으로 사람의 목청에서 나오는 어떠한 소리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 이렇게 한글의 과학성과 편리성은 세계 사람 누구에게서도 쉽게 배울 수 있음을 인정받고 있다. 유네스코가 문맹퇴치에 공헌한 사람에게 주는 상이 바로 '세종대왕상'이며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 문화유산으로도 등록됐고, 우리의 국력이 커 가면서 세계 64개국 742여개 대학에서 가르치는 국제적인 문자가 됐다. 현재 제2외국어로 채택한 나라가 7개국이며 실제로 한글을 사용하고 있는 인구도 남북한을 합한 7천500만명에서 날로 늘어나 세계 12위권에 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반포하실 때는 지식층에 있는 사람들에겐 한문이 유일하다시피 한 표현 수단이자 지적 과시 수단이었다. 한문은 '진서'라 하여 양반글이고, 한글은 '언문'이라 하여 천한 글로 폄하했다. 서민 초당에서나 아녀자들의 글로 격하시킨 것이다.

결국에는 일제가 한글말살정책으로 완전 불모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해방이 되고도 동네 유식한 선비(한문)는 자녀를 학교에 못 가게 했다. 학교에 가서 수업료 줘가면서 언문 배우는 것보다 서당에서 한문 배우는 게 옳다는 생각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일부 한글학자까지 영어 바람에 현혹돼 모양도 안 좋고 쓰기에도 불편하다며 자'모음을 풀어 필기체 영문 모양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 일도 있다.

글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의사소통의 도구다. 배우기 쉽고 쓰기 간편하고 표현하기 편리하면 좋은 글이다. 바로 한글의 최대 장점이 배우기 쉽다는 데 있다. 해방 당시 80~90%가 문맹이던 우리 국민이 단기간에 문맹 퇴치가 되고 지금 근대 산업국가로까지 쉽게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은 쉽게 이룩한 한글 보급의 덕분이라 하겠다. 이뿐만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지구상의 어느 나라도 따라잡기 힘들 정도의 정보화 기술력과 고급 콘텐츠 개발, 그리고 뛰어난 문화 기획을 통한 문화 연출을 선도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 거대한 정보문화의 힘의 원천은 바로 한글이라는 위대한 문자의 힘이다. 최근 모바일 기술(휴대폰 등의)이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선 나라가 된 이면엔 한글의 과학성이 자리 잡고 있다. 이렇게 한글이 주는 유'무형의 힘은 무궁하다.

일찍이 자유당 정부가 한글 전용정책을 실시한 일은 잘한 일이다. 그러나 자유당 정부의 관료의 대다수가 일제의 잔족들이라 일본 문화나 한자 문화의 향수로부터 벗어날 실력이 부족하여 실효를 못 봤다. 그 후에 5'16군사정부의 강력한 한글 전용정책이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했다. 관공서의 공문도 한글로 규격화하고 길거리의 외래어 간판은 철거하고 순 한글로 바꾸게 했다. 교과서가 한글로 바뀌고 책방에 한글 전문서적이 쏟아져 나왔다. 따라서 서양(미국)의 새로운 문물을 급속도로 수입하고 모방하는 데 활력소가 된 것이다. 그 모방이 쌓이고 쌓여서 창의가 나오고 발명품이 나오는 오늘의 대한민국이 된 것이다. 따지고 보면 한글이라는 훌륭한 문자가 없었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머지 않은 장래에 국력의 성장과 함께 중국어, 일본어를 앞질러 세계 제2의 공통어로 인정받고, 말 그대로 세계 속에 한국이 우뚝 솟을 것이다. 바로 올해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주 부론섬 바우바우시가 지역 토착어인 찌아찌아어를 표기할 공식문자로 한글을 도입했다고 하지 않는가. 한글이 반포된 지 563주년이 지났건만 정작 우리는 한글의 진가를 모르고 있는데 먼 나라에서 한글의 우수성을 인정한 데 더없이 뿌듯함을 느낀다. 지금 세계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따라서 우리의 국위도 하루가 다르게 뻗어 가고 있다. 그 원동력은 바로 한글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한글을 소홀히 했다. 다행히 올해부터 정부 차원에서 '한글 세계화 사업'을 본격화한다니 반가운 일이다. 모름지기 모든 국민 또한 적극 동참하여야 할 것이다. 이제 수출품도 'Made in Korea'가 아니라 '대한민국 제품'이란 심벌을 달고 전 세계를 누벼야 한다. 그래야 한글의 위력이 커지고 국력도 확대될 것이다.

이승헌 전 경상북도 교육위원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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