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各自는 무슨 뜻? 각각 X 연대하여 O

"친절한 판결문 작성하자" 대구지법 판사들 세미나

'피고 10명은 각자 10억원을 배상하라.' 법원의 손해배상 판결문에 자주 등장하는 문구다. 그러나 판결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 의미를 오해하기 쉽다. 여기에서 '각자(各自)'는 국어사전상 '각각'의 뜻이 아니다. 판결문에서의 각자는 '연대하여'를 뜻한다. '각자 배상하라'는 문구를 쉽게 풀면 책임의 정도는 다를 수 있지만 서로 연대해 부담하라는 의미가 된다. 이원범 판사는 2006년 대구지법 부장판사로 근무하면서 '민사 판결서 작성의 개선 방향'이라는 논문을 통해 " 법원이 '각자'라는 용어에 대해 교수 10명에게 의미를 물어본 결과 모두 '각각'으로 해석했다"며 "대체 용어 개발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해태, 기왕증, 사위, 완제일…. 판결문에서 종종 볼수 있는 한자다. 대체 무슨 뜻일까. 각각 '제때 하지 않음', '과거의 병력', '거짓', '다 갚는 날'이라는 뜻이다. 또 일상 생활에서 거의 쓰지 않는 한자나 일본식 한자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상당(相當)하다', '소명(疎明)이 있다', '참작(參酌)하다'는 전형적인 일본식 한자로 각각 '적당하다', '밝혀내다', '헤아리다'라는 쉬운 한글로 바꿀 수 있다.

563돌을 맞은 한글. 한글 세계화가 화두가 되고 있지만 아직도 판결문에는 이해하기 힘든 어려운 용어와 한자어 표현이 가득하다. 마침표를 찾을 수 없는 긴 문장에 읽다 지치기 일쑤다.

이런 문제점을 인식한 법조계는 쉽고 짧게 쓰는 판결문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재판 선진화와 국민과의 소통을 위한 노력이다. 판결은 결국 국민을 위한 것이고, 판결문 역시 주권자인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9, 10일 대구지법 87명의 판사들이 참가하는 1박 2일 경주 세미나에서는 친절한 판결문 연구를 위한 무대가 마련된다. 대구지법 김길량 판사는 '민사 판결서 간이화 실천 방안'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친절한 판결문' 사례를 소개한다. 또 '~에 관하여 살피건대', '더 나아가 살필 필요 없이' 등 상투적 문구나 접미어, 접두어, 접두사를 생략하는 판결문을 제안한다. 문장은 짧게, 4, 5행마다 단락을 나눠 쉬운 우리말을 쓰고 읽기 편하게 수식·각주·괄호 등을 활용하는 방안도 함께 제시한다. 김 판사는 "간결한 판결문은 서류 작성 시간을 줄여 재판 심리에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쏟을 수 있어 판사들에게도 이익이다"고 했다.

앞서 지난해 말 서울남부지법은 '판결문 쉽게 쓰는 방법을 찾겠다'며 법원 역사상 처음으로 국립국어원에 판결문을 보냈다. 국립국어원은 '소정' 또는 '제반'이라는 한자어를 '여러(가지)'라는 우리말로 바꾸고, 장황한 설명 뒤에 결론을 내리기보다 결론을 맨 앞으로 보내고 중간 중간 순번 또는 소제목을 붙여 알아보기 쉽게 하자는 의견을 냈다.

어려운 법률 용어의 한글화 작업도 시작됐다. 실제 정부는 지난 7월 법률안상 어려운 법률 용어를 알기 쉽게 고친 법제처 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앙양하다'는 '높이다'로, '연부'는 '해마다 나누어', '도괴'는 '붕괴', '멸각하다'는 '없애버리다', '장리하다'는 '관장하다'로 각각 바꿨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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