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조선족 대학생 윤일광씨 '경북대 유학기'

"대구서 3년, 결국 학생·주민들 가슴을 열었습니다"

윤일광씨는 몇 달 전 필름카메라 인터넷 동호회에 가입해 대구의 학생, 직장인 등과 모임을 계속하고 있다. 요즘은 조만간 열리는 공모전에 낼 작품을 찍기 위해 시간 날 때마다 학교 안팎을 다니고 있다. 이채근 기자
'경북대 국제교류단-친구친구' 회원들이 모임 후 찍은 사진.
윤일광씨는 몇 달 전 필름카메라 인터넷 동호회에 가입해 대구의 학생, 직장인 등과 모임을 계속하고 있다. 요즘은 조만간 열리는 공모전에 낼 작품을 찍기 위해 시간 날 때마다 학교 안팎을 다니고 있다. 이채근 기자

'꿈을 이루기 위해 한국에 왔다. 기대를 안고 할아버지의 나라를 찾았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 달랐다. 서울 유학 절차는 너무 까다로웠다. 추천받은 곳이 대구의 경북대였다…. 한국어는 어릴 때부터 익숙한데 어학당 6개월을 거쳐야 입학할 수 있다고 한다.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우연히 미혼모 한 사람을 만났다. 그녀는 사회에서 버려져 있었다. 지원받을 곳이 없다는 사실보다 주위의 차가운 시선들을 더 힘들어했다.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나라인데 성에 대한 편견이 사회주의 중국보다 훨씬 심하다니!'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07학번 윤일광씨. 고향 하얼빈을 떠나 대구에 온 지 3년 동안 그의 삶은 내내 분주했다. 미디어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고 언론인이 되겠다는 꿈을 성취하기 위해 겁 없이 뛰어든 유학 생활. 도전 앞에는 녹록지 않은 가시밭길이 펼쳐져 있었다.

'사람들의 눈길이 불편하다. 한국말이 서툴면 금세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미국이나 유럽 출신 학생들은 존중하는데, 중국이나 동남아 친구들은 쉽게 할 수 있는 서빙 아르바이트도 잘 주지 않는다. 경북대에만 외국인 유학생이 1천명은 될 것 같은데 대학측의 배려도 별로 없다. 아직 한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1학년생들에게는 좀 더 따뜻한 손길이 필요한데….'

수업이 끝나면 교수 연구실을 찾아갔다. 교과서와, 들었던 이야기와 너무 다른 한국의 사회 현실에 질문을 던졌다. 이해할 수 없는 한국의 갖가지 정책과 규제들에 문제를 제기했다. 처음엔 엉뚱하다는 눈길로 쳐다보던 교수들도 시간이 지나며 외국인 학생들의 다른 생각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신문방송학과에는 중국인 유학생이 7명이나 된다. 박정순 교수님이 외국인 학생들의 모임 결성을 권했다. 그렇게 '국제교류단-친구친구'가 출범했다. 교수님들과 한국인 선후배들의 도움 덕에 모임은 활발하게 운영됐다. 친구들과 함께 학교 인근 식당, 가게 등을 순례했다. 한국 문화에 적응한다는 의미와 함께 학교 근처부터 외국인 학생들에 대한 시각을 바꿔 보자는 뜻도 있었다. 막상 나서 보니 대구 사람들은 마음이 열려 있었다.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편견은 충분히 없앨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2학년이 되면서 그는 '친구친구'의 단장이 됐다. 문호를 다른 단과대까지 넓혔다. 공대, 인문대 등에서도 모임에 참가했다.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미얀마 등 국적도 다양했다. 회원 수는 50명을 훌쩍 넘었다.

'회원들과 함께 대구의 방송국들을 견학했다. 경북대 선배들뿐만 아니라 모든 직원들이 다정하게 맞아줬다. 이번 축제 때는 각국 학생들이 전통 복장을 입고 전통 음식을 만들어 선보이는 마당을 펴기로 했다. 가을에는 사회대 앞에서 중국 친구들과 함께 중국 음식 축제를 열 계획이다.'

노력 덕분에 몇 년 사이 학교 안팎의 분위기는 크게 달라졌다. 거리낌 없이 다가와 외국인 학생들과 교류하려는 학생들도 많아졌다. 그는 더 큰 문제를 던졌다.

'최근 한국에 다문화 열풍이 불고 있다. 그런데 너무 일방적이고 주입식이다. 한국에 온 사람에게 한국 문화를 가르치려고만 할 뿐 그들 나라의 문화를 배우려 하지 않는다. 방송에는 늘 "한국 사람 다 됐어요", "김치 없인 밥 못 먹어요",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믿어요"라는 멘트만 되풀이된다. 이해와 배려가 빠진 지금의 다문화 정책은 한국화 정책이라고 불러야 맞다.'

대학원은 일본 쪽으로 진학한 뒤 취업은 한국에서 하고 싶다는 그는 요즘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는다. 생활비 조금 버는 것보다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을 받는 게 훨씬 이익이기 때문이다. 취업을 위해 한국을 떠났다가 몇 년 뒤 다시 돌아올 그의 일기에는 이런 글이 실릴 수 있을까.

'한국은 이제 진짜 글로벌 사회가 된 것 같다. 처음 본 외국인들에게 먼저 말을 걸고 친절을 보인다. 외국 옷을 입고 외국인들과 어깨동무한 한국인 친구들을 누구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미국이나 유럽인보다 중국이나 동남아 사람들을 더 살갑게 대한다. 그런 면에서 대구는 한국에서도 가장 선진적인 도시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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