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거리, 베를린
작가: 키르히너(Ernst Ludwig Kirchner 1880~1938)
제작연도: 1913년
재료: 캔버스 위에 유채
크기: 121 × 95cm
소재지: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
1905년, 프랑스에서 야수파가 결성된 바로 그 해, 이웃나라 독일에서도 비슷한 성향을 지닌 강력한 미술운동이 태동을 한다. 다리(Die Brucke)란 뜻을 가진 이 그룹은 여러 가지 면에서 야수파와 유사한 점을 보이고 있는데 예를 들자면, 대학의 교우 관계를 기반으로 하여 결성되었다는 것과 뚜렷한 강령이 없다는 점, 그리고 조형적으로는 고흐, 고갱, 뭉크에 대한 관심, 흑인조각의 영향, 대담한 데포르마시옹 및 원색을 기반으로 하는 강력한 대조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이 두 사조는 그림의 본질적인 측면에서-그림의 본질은 표현이라는 것은 야수파와 다리파가 공유하는 관점이다- 매우 대조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야수파가 순색에 의한 2차원적 구성이라는 순수한 조형적인 문제에 집착한 반면에 다리파는 정열이나 불안의 드라마를 화폭 위에 전개하는 것이 문제였으며, 회화의 방법보다는 내적충동의 표현이 우선이었다.
이러한 차이점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여러 가지 원인을 들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사회적 배경이 가장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가 소위 벨 에포크(Belle Epoque)의 끝자락에서 제국(帝國)으로서의 마지막 호사를 누리고, 야수파화가들은 이를 화폭 위에 시각적 쾌감으로 치환하던 그 때, 독일의 상황은 너무도 달랐다. 뒤늦게 산업혁명에 성공한 독일의 상공업은 짧은 시간에 급격한 성장을 이뤄냈으나 곧 시장의 한계에 부딪치게 되면서 정치와 경제 전반에 극심한 불안을 야기하자 자본가와 군부는 이 난관을 전쟁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였다.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운 암울한 사회 분위기, 그리고 당시 유행한 키에르케고르의 사상은 다리파 화가들에게 모든 사물의 존재를 의심하는 일종의 우울증을 가져다주는 동시에 그들로 하여금 유토피아의 미래를 바라보는 메시아적 휴머니스트를 자처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불합리하고 고통스러운 세계에 대한 시대의 증인이며 그들의 작품은 그 고통으로 인한 일종의 회화적 절규인 것이다.
이 그림은 다리파의 리더인 키르히너가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913년에 그린 작품으로, 그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잘 나타내주고 있는데, 삭막하면서 허위적인 도시의 모습을 강렬한 색채와 선으로 표현하고 있다. 빠른 동작에 의해 비스듬히 그어진 날카로우면서도 드라마틱한 선과 근사보색의 대조 및 왜곡된 비례의 형태 등으로 베를린의 화려한 외형 뒤에 숨겨져 있는, 혹은 억지로 외면하고 있는 전쟁 직전의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와 사람들을 짓누르던 불안감과 긴장감을 놀랍도록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 이 작품은 직접적으로는 타락한 부르주아 문화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더 나아가서는 사회혁명의 필요성에 대한 역설로까지 볼 수도 있겠다.
권기준 대구사이버대 미술치료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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