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마라토너들은 '마라톤은 일단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운동'이라고 말한다. 뛰면서 얻는 건강과 희열을 마약에 빗대기도 한다. 하지만 그 맛에 도취되어 몸을 돌보지 않았다가는 큰 화를 입을 수 있다. 상당한 수준에 오른 마라톤 마니아들 역시 체계적이고 철저한 준비 없이 경험만 믿고 달렸다가는 영원히 뛰지 못하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
◆통증 무시하면 영원히 못 뛴다
'삶이 곧 마라톤'이라 여겼던 최모(45)씨는 6개월 전까지 머릿속에 마라톤 생각만 가득했다. 일어나자마자 집 주변을 뛰었고 퇴근 후에도 달리기를 거른 적이 없다. 쉬는 날이면 입소문 난 코스를 찾아 원정훈련을 떠났다. 달력에는 전국 마라톤 대회 일정이 빼곡했다. 마라톤 시작 6년 동안 30여 차례 풀코스를 완주했고 기록도 3시간 20분대로 수준급이었다.
서브스리(풀코스 3시간 이내 주파)를 꿈꾸던 지난 5월, 평소 아팠던 오른쪽 발바닥에 심한 통증이 왔다. '족저근막염'이란 의사 진단이 떨어졌다. 발뒤꿈치에서 시작해 여러 갈래로 발가락에 연결되는 조직이 붓고 염증이 생긴 것인데 정도가 심했다. 의사는 과도한 달리기 때문이었다며 치료와 휴식을 권했다. 3개월 동안 치료를 받는 도중에도 달리기 욕구를 참지 못했다. 그 바람에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후유증은 발목, 무릎, 허리, 심지어 갈비뼈에도 나타났다. 최씨는 "통증을 가볍게 여긴 탓에 부상이 도져 마라톤을 그만둬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후회했다.
좀 뛰었다는 사람치고 한두번 부상 경험이 없는 사람은 없다. 가벼운 발목 통증은 이야깃거리도 안 된다. 간단해 보이는 달리기에 이토록 부상이 많은 건 무리한 탓이다. 대구보건대 물리치료과 서현규 교수는 "장시간 달리기를 할 때 체중이 발바닥과 무릎 등에 가하는 충격은 매우 크다"며 "신체가 보내는 이상 신호인 통증을 무시하면 증상이 악화되거나 더 큰 부상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강모(42)씨도 달리기를 시작한 뒤 무릎 인대와 엉덩이 관절 통증으로 고생을 했다. 마라톤을 시작한 뒤 3개월 만에 하프에 도전하는 등 실력은 쌓았지만 몸이 따라주지 못했다. 이후 거리를 줄이고 근력운동에 집중했다. 몸에 맞는 달리기를 하니 피로감이 덜했다. 강씨는 "건강을 위해 20㎞ 이상의 장거리 달리기는 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돌연사 남의 일 아니다.
무리한 달리기는 부상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마라톤대회 참가자 5만명 중 1명꼴로 사망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누구나 사망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 심혈관 계통에 문제가 있어 사고가 나지만, 무리한 달리기가 원인이 되기도 한다. 계명대 장창수 마라톤 감독은 "돌연사는 초보자보다 마라톤 경험이 많은 사람에게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기록 향상을 위해 페이스를 오버하거나 완주 욕심을 내다 발생하는데 심장 관련 질환, 수분 섭취 부족, 일사병, 저체온증, 피로 누적 등이 원인"이라고 했다.
평소 문제 없이 훈련해도 감춰져 있던 심장질환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실제 200㎞ 울트라마라톤 대회 참가 등 18년 경력의 아마추어 마라토너 김모(55)씨도 최근 건강검진에서 부정맥 진단을 받고 마라톤을 그만뒀다. "이 상태로 달리기를 계속하면 생명을 잃을 수 있다"는 의사의 경고를 무시할 수 없었다.
땀이 많이 배출되는 마라톤은 수분 부족으로 혈액이 농축돼 심장이나 뇌 혈관을 막는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 평소 혈관 속에 있던 혈전(핏덩어리)이 심장 동맥을 막아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 있다. 더 큰 위험 요소는 과로다. 꾸준히 활동하는 마라토너 대부분은 40대 이상 중장년층이다. 업무와 스트레스로 지친 몸에 휴식을 주지 않고 무리한 달리기를 할 경우 과로사 위험이 그만큼 높아진다. 건강한 달리기 방법은 자신의 몸에 맞게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달리는 것이다. 쉽지만 지키기 어려운 마라톤의 진리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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