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특허법인 '대아' 정병직 대표 변리사

"지역 기업 특허출원 믿고 맡겨 주십시오"

"아마 제가 제일 어릴 것 같은데요.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승부를 걸고 싶어 독립해버렸습니다. 하하하."

특허법인 '대아'의 정병직 대표 변리사는 이제 37세이다. 국내 특허법인 대표 가운데 이례적으로 젊은 편이다. 2003년 변리사 시험 합격 동기들 대부분이 아직 월급쟁이 생활을 하고 있지만 용기있게(?) 자신의 법인을 차렸다.

"경제상황이 안 좋을 때 시작하면 좋은 점이 더 많다고 하지 않습니까? 물론 겁도 났지만 변리사 업무는 경륜보다 기술분야의 전문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자신감을 가졌습니다."

키 187cm, 몸무게 100kg에 육박하는 거구답게 회사 경영도 무척 공격적이다. 함께 일하는 변리사 5명과 직원 16명의 급여는 다른 법인보다 1.5배 정도 많고 앞으로 해외유학도 보내줄 계획이라고 했다. 사무실도 3천만원을 투자해 완전 전산화를 이뤘다. 업무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법인 설립 두달만에 목표를 '누구나 오고 싶어 하는 직장'으로 정했습니다. 시작단계인 만큼 능력 있고 충성심 강한 조직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돈을 위해 일하지 말고 사람을 위해 일하자'는 제 소신을 따랐습니다."

무턱대고 '허세'만 부린 것은 물론 아니다. 그가 대형 특허법인에 근무할 때 일이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반도체 관련 특허를 내세우며 중소기업을 제소하려 하자 의뢰업체 직원들과 3일 동안 밤을 새운 끝에 상대편 주장의 허구를 밝혀냈다. "호텔에는 가보지도 못할 정도로 고생했지만 상대 대기업 특허팀으로부터 '적이지만 훌륭하다'는 평가를 들었을 땐 정말 보람 있었습니다. 서류보다 현장이 중요하다는 점을 배운 것도 큰 소득이었죠."

변리사의 길은 우연히 찾아왔다. 고려대에서 재료공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원에서 반도체를 전공, 대기업 반도체연구소에 취직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대학원을 졸업할 무렵 외환위기가 터졌고 설상가상으로 취미인 농구시합 중 눈까지 크게 다쳐 실명의 위기를 맞았다. "제가 원래 낙천적입니다. 군에 안 가게 된 걸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자고 마음 먹었죠. 그래서 생각도 안했던 변리사 시험에 한 번 도전해보게 됐습니다."

그는 경남 함양에서 태어났지만 대구에서 초·중·고를 졸업했다. "서울에서 살아 보니 TK 출신이라는 게 큰 도움이 됩니다. 대구경북은 첨단산업이 부족해서 특허 출원은 그리 많지 않지만 의료복합단지 등이 조성되면 분명 달라질 겁니다. 저도 지역기업들의 권익 보호에 힘 닿는데까지 노력할 생각입니다." 포항테크노파크 기술이전센터 자문변리사도 맡고 있는 그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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