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에서 그의 한마디는 묵직한 카운터 펀치다. 제약·바이오 분야에서는 그의 펀치에 상대가 그로기 상태에 빠지기도 하고, 다운됐다 벌떡 일어서기도 한다. 주가 급등과 폭락의 쌍곡선이 그의 입에 달렸다 해도 과언 아니다. 이미 주요 경제지나 중앙일간지에서 매년 상·하반기 평가하는 '베스트 애널리스트'에 30차례 가까이 오른 임진균(46)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이다.
임 센터장은 인터뷰 하는 동안에도 컴퓨터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일에 관해서만은 그야말로 무아지경이다. 수많은 애널리스트 사이에서도 큰 지명도를 갖게 된 배경에 대해 물었다. 그는 "그런 인물은 아니다"며 겸손해하면서도 "나만의 분야를 만들어 한 우물을 팠다. 그리고 나름 깊이 있는 공부를 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공부 역사'는 남달랐다. 경영학을 전공한 임 센터장은 1993년 대우경제연구소에서 경영 컨설턴트로 일했다. 그러다 대우증권 애널리스트로 자리를 옮겼다. 그 때 깨달았단다. "전문성도, 전문 분야도 없구나" 하고. 그래서 그는 "학사때 전공이었던 경영학을 약학에 접목해보자"며 의약식품대학원에 진학, 산업약학을 전공했다.
그 뒤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대학원 공부는 그에게 애널리스트로서의 큰 밑거름이 됐다. 신약이 어떻게 개발되고, 어떤 테스트 과정을 거치는지 이해하면서 제약회사의 기초체력을 분석하고, 향후 실적을 내다보는 안목을 키웠다. 대학원은 친목 교류 뿐만 아니라 '실무 교류' 에서도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시장이 됐다. "제가 모든 걸 알 수는 없잖아요? 저보다 훨씬 전문 지식이나 정보가 풍부한 분들이 계시고요. 그 분들을 얼마나 알고 있느냐가 이 분야에서는 무엇보다 필요한 자산이었습니다."
좋은 회사를 발굴해 투자자들에게 추천하면서 성취감을 맛봤고 자신의 일을 즐기기 시작했다. 대학뿐 아니라 이곳저곳에서 강의 섭외가 쏟아졌다. 낮에는 일하고 밤이 되어서야 공부해야 했다. 제약협회 자문단이 됐고, 5년 전에는 그의 주도 하에 '제약산업 경영연구회'라는 모임을 만들었고 현재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애널리스트는 아주 화려해보이는 직업 같지만 3D 업종에 가깝다"며 "그만큼 몸과 마음이 지치는 직업"이라고 털어놨다. 연봉은 높지만 수명이 짧아 스트레스가 많고, 공부하지 않으면 절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없어 곧 몰락한다는 약점이 있다는 설명이었다.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하자 "얼마나 열정적인가, 자신의 일에 몰입할 수 있는가, 조직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가, 무엇보다 '헝그리 정신'이 있는가를 본다"고 귀뜸했다. IBK증권으로 옮긴 지 1년 만에 후배 애널리스트 2명을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키워내는 등 인재 발굴에도 탁월한 능력을 보인 전문가다웠다.
그는 "누구에게나 선택의 순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준비된 사람이 아니었다면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중력을 떠올리진 못했겠죠." 항상 노력하라는 당부였다.
임 센터장은 김천 감문면 출신으로 김천고를 거쳐 고려대 경영학과, 중앙대 의약식품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상현기자 subo80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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