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고객님, 화장실은 저쪽이십(?)니다"

서비스 경쟁 과열 '시'자 과잉 현상…이상한 높임말 심각

황수현(31·경산시 중방동)씨는 며칠 전 남편과 함께 동네 피자가게를 갔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꼬박꼬박 높임말을 사용하는 가게 점원의 말이 오히려 듣기에 거북해 화가 날 지경이었던 것.

"고객님, 이것은 최근 새로 나온 신제품이신데요. 한번 이용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주문하신 피자이십니다." "계산 도와드리겠습니다. 2만4천원이십니다."

황씨는 "점원은 웃는 얼굴로 시종일관 존댓말을 사용했지만, 피자와 금액 등 사물에까지 '시'를 붙이는 과도한 높임말의 사용에 짜증이 났다"며 "요즘 워낙 서비스 경쟁이 과열되면서 높임말 사용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정작 '정확한' 높임말 사용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어법에 맞지 않는 높임말의 사용으로 우리말이 오염되고 있다. 과도하게 '시'자가 남발되면서 듣기 거북한 표현들이 실생활은 물론 방송에서까지 쏟아지고 있는 상황.

홈쇼핑 채널은 아예 '시'자의 홍수 상태다. 8일 한 건강보조제를 판매하는 방송에서 쇼핑호스트는 "면역력에 도움받아보실 수 있도록 가져가실 수 있는 기회입니다. 많으신 고객님들이 선택해주시고 계십니다. 아시는 고객님들은 가격만으로도 놀라십니다" 등의 표현을 반복해서 사용했다.

하지만 이것은 틀린 표현이다. 한 문장 안에 동사가 여러개 나열될 경우 마지막 동사에만 '시'자를 넣어 높이는 것이 맞으며, '많은' 이라는 형용사는 '시'자를 넣어 '많으신'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것.

또 높임말은 주체가 사람일 때만 사용해야 하지만 사물을 높이는 웃지 못할 경우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자리가 없으십니다" "화장실은 저쪽이십니다" 등의 표현을 쉽게 들을 수 있지만 '자리'와 '화장실'을 높이는 황당한 표현이다.

'압존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잘못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압존법은 문장의 주체가 말하는 이보다는 높지만 듣는 이보다는 낮아, 그 주체를 높이지 못하는 어법.

박종경(70·남구 대명동)씨는 "추석에 중학생 손자가 와서 한다는 말이 "할아버지, 어머니께서 과일 가져다 드리라고 말씀하셨어요"라고 해 혼을 냈다"며 "어른 앞에서는 어머니를 낮춰야 하는 법인데 요즘 아이들은 높임말의 정확한 사용법을 배우지 못한 것 같아 씁쓸했다"고 했다.

이런 현상에 대해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이상규 교수는 "'시'자 과잉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높임말에는 무조건 '시'만 붙이면 된다고 잘못 알고 있는 현상은 젊은층에서 특히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며 "서비스 업체들도 높임말 사용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올바로 말하는 방법에 대한 교육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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