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중에 술만한 음식이 없고 국 중에는 소고깃국만한 게 없다. 옛 어른들의 말이다. 사실 그렇다. 술 없이 먹는 음식과 안주 없는 술에서는 맛과 멋을 느낄 수 없다. 음양의 조화가 그렇듯 주효(酒肴)도 항상 붙어다녀야 제맛을 낸다. 막걸리 한잔에 소고깃국이라, 참 좋다.
장터국밥은 소고깃국에 밥을 만 것이다. 요즘은 그게 대중적 별미 음식이지만 옛날에는 장터에서 사돈을 만나거나 소를 팔고 목돈을 쥐었을 때 거간꾼에게 한 잔 낼 때 먹는 고급 음식이었다. 어렸을 땐 장터국밥 한 그릇을 기역자 목판에 앉아 배부르게 먹어 보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그 뜻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장터국밥 배부르게 먹어보는 게 소원
주태백이 영감이 있었다. 장에 가기만 하면 물건을 잊어버리고 오는 버릇이 있었다. 하루는 등 너머 사돈을 만난다며 모시옷을 잘 차려 입고 집을 나섰다. 수인사가 끝나고 파전 안주에 소고깃국을 시켜 거나하게 한잔 했다. 낮술이 과한 탓으로 귀갓길 묏등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나니 저녁 무렵이었다. "아버님, 두루마기는 예?"하고 며느리가 물었다. "야야, 초장에 휘떡 했는 갑다." 술이 덜 깬 영감의 대답이었다.
어릴 적 우리 동네는 너나없이 가난했다. 아이들은 영양 부족으로 얼굴엔 마른버짐이 피어 있었고 머리에는 기계충이 올라 헌데가 소똥처럼 눌어붙어 있었다. 동네 어느 집에서 잔치를 하면 돼지비계 국물을 얻어먹고 모두들 설사하기에 바빴다. 나물만 먹던 위장이 갑자기 들이닥친 기름기를 버텨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가 봄이었던가. 학교를 파하고 거랑(川)에서 피라미를 잡다가 해거름에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와 인자 오노"하시면서 반갑게 맞아 주셨다. "소고깃국을 끓였는데 얼른 한 그릇 묵어봐라"시며 국과 밥을 가득 담아 내오셨다. 이게 얼마만인가. 밥이 먼저 들어가면 바로 목구멍으로 넘어가고 국은 뒤따라 들어가면서 춤을 춘다. 입안에서 밥과 국이 서로 만날 시간이 없었다. 이날 내 목구멍은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가자고'라고 읊은 소월 시의 생생한 현장이었다.
##도시락에 웬 소고기 장조림
다음날 아침에도 소고깃국에 밥을 말아 신나게 퍼먹고 등교했다. 그런데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열어 보니 경천동지할 일이 그 속에 담겨 있었다. 반찬통에는 통마늘을 곁들인 소고기 장조림이 가득 담겨져 있었다.
그 당시 소고깃국은 잘 해야 일 년에 한두 번이 고작이었다. 소고깃국은 소가 장화를 신고 지나갔는지 고기 모타리는 구경할 수가 없었는데 이게 어찌된 영문인가. 국에도 장조림에도 고기 천지였으니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장조림을 동무들에게 뺏길까봐 한쪽 구석에서 얼른 먹어치우고 운동장으로 달려 나갔다. 장조림이 금세 힘으로 바뀌었는지 공을 차면 훨씬 멀리 날아가는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소고기가 어디서 생겼는지 물어보질 않았다. 누나들도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다음 주일날 아침에 어머니는 교회에 가시고 궁금증에 대한 비밀의 문은 열리고 말았다.
누나 친구 중의 어느 한 아이가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병든 소를 잡아 동네에 헐값으로 풀어 먹였단다"라고 말함으로써 출처는 밝혀졌지만 어느 누구도 소고깃국 먹기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 일이 있은 후 몇 달이 지나도록 병들어 죽는 소는 더 이상 생기지 않았다.
앞집 부면장네 바깥마당에 매여 있는 늙은 암소에게 "넌 언제 병들어 죽을 거야?"하고 물어 보았다. 소는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눈만 껌벅거렸다.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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