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종욱의 달구벌이야기](38)대구의 막걸리

골목 안 막걸리집은 피란 예술가들 아지트

◆밑술 발효시켜 막걸러 먹는 술…경북, 1925년 탁주생산량 1위

예로부터 대구는 막걸리의 고장으로 불렸다. 1925년 탁주 생산량을 보면 경북이 전국 1위였다. 우리 나라의 전통주는 청주'소주'탁주이다. 청주는 밑술 독에 용수를 넣어 맑은 물이 고이면 퍼내는 것이고, 소주는 밑술을 증류시켜 이슬로 받아낸 것이다. 반면에 탁주는 밑술을 발효시킨 다음 막 걸러서 먹는 술이다. 백주(白酒)'농주(農酒) 또는 노동주(勞動酒)로 불리기도 했고, 금주령이 내릴 때도 예외였다.

일본 사람들은 자신들이 마시는 술을 청주(淸酒)라 했고, 한국 사람들이 마시는 술은 탁주(濁酒)라고 낮춰 불렀다. 그들이 즐겨 마시던 청주는 다른 말로 '마사무네' 즉 정종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제조회사의 이름이자 에도시대 도검의 장인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우리는 술을 차게 해서 마시는 데 비해 일본 사람들은 청주를 데워서 마신다.

◆고 이병철 회장도 양조사업…49개 양조장, 대구탁주로 통합

1928년 지역 최초로 기업형 막걸리 생산이 시작되었다. 김재환이 중심이 되어 자본금 10만원으로 설립한 대구 조선주 양조주식회사가 그 시초였다. 그 뒤 해방과 함께 일본 사람들이 경영하던 양조장이 한국 기업인들에게 이양되었고, 고인이 된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도 동인동 무네이(棟居) 주조장을 넘겨받았다. 그 뒤 풍국주정(주)으로 이름을 바꿔 '삼성소주'와 정종인 '월계관'을 만들어 호남의 '백화 수복'과 자웅을 겨루었다.

1970년 들어 지역의 양조업계에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세화, 고려, 남산, 친우 등 49개 양조장이 소액 주주 형식으로 대구탁주(주)로 통합되었기 때문인데, 세수 확보와 주세 정책의 일원화를 위해 국세청이 일제 강점기의 주세령을 본받은 셈이었다.

1961년에 막걸리의 주정이 8도에서 6도로 낮아졌다. 또한 1963년에는 쌀로만 빚던 술에 80퍼센트의 밀가루를 넣어 빚도록 했는데, 한 톨의 쌀이 귀하던 시절이라 쌀 소비를 억제하려는 정부의 시책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1977년 쌀로 빚은 막걸리가 다시 등장했다. 그리고 술병의 변천사도 흥미롭다. 초창기에는 낱개로 된 술병이 없었고, 한 말들이 나무통으로 유통되었으며, 그러다가 플라스틱 흰색 통으로, 낱개로 팔 수 있는 비닐병으로 바뀌었다. 1989년부터 딱딱한 패트병으로 바뀌었다.

자전거를 운송 수단으로 이용했었다. 이른 새벽 통행금지가 해제되면 짐 자전거에 막걸리 통을 잔뜩 실은 배달원들이 거리를 누볐다. 자전거에다 좌우로 두 개씩 싣고, 거기다 짐칸에 네 개를 실으면 중심 잡기조차 어려울 것 같은데도 거뜬히 내달렸다. 땀을 뻘뻘 흘리며 달리는 모습은 요즈음의 묘기 대행진을 보는 것 같았다. 그처럼 힘든 일을 하는 배달부에 대한 주모들의 인심은 후했다. 그럴 것이, 그들을 야박하게 대했다가는 화풀이를 당하기 일쑤였다. 이를테면 술통 안에 침을 뱉거나 오줌을 누는 심술을 부리기도 했었으니까.

◆술통 실은 짐자전거 거리 누벼…안주는 육회부터 왕소금까지

그 시절, 막걸리는 안주가 따로 없었다. 호주머니 사정이 좋으면 육회'빈대떡'녹두전 같은 고급 안주를 시키기도 했지만, 왕소금 몇 개를 손으로 집어서 입안에 털어 넣으면 그만이었다. 그 시절 술맛이 좋기로는 박창근이 운영하던 가창양조장이 으뜸이었다. 지금의 가창파출소 맞은편 주유소 자리에 있었는데, 아침 일찍 달구지에 실어서 도심지로 운반했다. 그러니 달구지를 끌고 온 소도 피곤하기는 마찬가지일 터, 목을 축이라고 소에게도 막걸리를 한잔 권하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사람도 취하고 소도 취해 비틀거렸고, 어떻게 왔는지 아는 것은 오로지 바람뿐이었다.

대구에는 이름난 막걸리집이 많았다. '감나무집' '말대가리집' '도로메기집' '석류나무집' '공주집' '곡주사', 그 밖에 문패도 번지도 없는 허름한 술집들이 골목마다 자리 잡고 있었다. 그곳에 가면 피란살이에 시달리던 문인과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오상순, 마해송, 이한직, 조지훈, 최인욱, 이윤수, 박훈산, 왕학수, 권태호, 이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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