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우리나라 건설 현장의 산 증인이다. 정년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회사에 떡하니 붙어 있는 넉살 좋은 비법은 한 해 절반을 지방 여관에서 보내는 현장 중독자(?)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았다.
1978년부터 건설 현장을 지키고 있는 코오롱건설㈜ 이찬우(59) 건축영업본부 부장. 명함의 직함만 부장일 뿐 그는 우리나라 전 지역 코오롱건설의 현장감독자다. "몰라, 이제는 각 현장의 건설자문직이랄까요? 현장의 애로사항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 각종 대외협력 문제를 위해 뛰고 있지요."
건설 현장에서 뼈가 굵은 그는 1996년 건설 관련 사업체를 직접 차리기도 했지만 1년 만에 외환위기가 터져 모든 재산을 잃기도 했다. 그때 재기를 도운 것은 건설 현장에서 일궈낸 그만의 '문어발 인맥'.
"큰 꽃집을 열었어요. 주위에서 도와주겠다고 해서. 전 아직도 30년 전 건설 현장에 함께 있던 공무원들, 현장 노동자들, 인근 주민들과 연락을 하고 있거든요. '사람이 재산이다.' 전 그 말을 뼛속까지 믿고 있지요."
서울에 작은 화원을 열자 주문이 쏟아졌다. 각 아파트 공사 현장의 착공식, 완공식이나 각종 행사에 쓰일 꽃 주문으로 눈코 뜰 새 없었다. "아는 사람이 뭔가를 부탁하면 최선을 다해서 도와줬지요. 친구가 부도를 내 힘든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사업이 망하고 일어난 것도 사람들 때문이었기에 미워하지 않습니다."
술과 골프, 고스톱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3불(不) 인생'. 하지만 그의 휴대전화에는 2천개의 연락처가 빼곡하다. 동창회 명부를 제외하고다. "솔직하게 다가서고, 손해봤다는 생각 말고, 고마운 것은 크게 갚고, 섭섭한 것은 빨리 잊는 것이 내 주의(主義)입니다." '사람 장사'에서 이보다 큰 이문을 남긴 이가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는 직함도 많았다. 상주중과 김천고 재경동창회 부회장, 상주향우회와 김천향우회 이사와 부회장, 중앙대 건축과 총동창회 부회장 등등 상주와 김천의 '파워 인맥'을 자랑한다. "주말이면 결혼식에, 요즘엔 장례식에 가느라 바빠요. 길흉사에는 절대 빠지면 안 되거든요."
1951년 김천 부곡동에서 태어난 그는 부산 중앙초교, 상주중, 김천고, 중앙대 건축학과, 경기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상현기자 subo80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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