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가명·11·대구 달서구 송현동)이는 19일 아침 울음을 터뜨리고 나서야 집을 나섰다.
추워진 날씨에 할머니(76)는 겉옷 하나를 더 입혀 학교를 보내려고 했으나 민영이는 "또 주워온 옷이냐"며 화를 냈다. 민영이의 옷은 모두 할머니가 주워온 것을 씻어 수선한 것이다. 할머니 옷도 마찬가지다.
할머니에게 한바탕 쏘아붙이고 집을 나섰지만 민영이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몇 주 전 갑자기 어지럽다며 넘어진 할머니의 손목과 손가락이 퉁퉁 부어 올라 있었기 때문.
하지만 할머니는 병원에 가지 않는다. 병원에서 물리치료 한 번 받는데 드는 돈 1천500원이 아까워 통증을 그냥 견뎌내고 있는 것이다.
민영이는 100일이 갓 지났을 무렵부터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엄마 아빠는 할머니 손에 민영이를 맡긴 채 사라져버렸다. 민영이와 할머니가 한 달에 쓸 수 있는 수입이라고는 민영이 앞으로 나오는 기초생활수급비 20만원과 할머니의 기초노령연금, 폐지를 주워 얻는 3, 4만원 등 30여만원이 전부다. 할머니는 남편이 다른 부인에게서 얻은 자녀 3명이 부양의무자로 돼 있어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는 상황이다.
할머니는 눈물까지 흘리며 투정을 부리는 손녀를 볼 때면 마음이 아프기만 하다. 할머니는 "폐지를 줍는 할머니가 부끄러울 법도 한 나이지만 꼭 손수레를 함께 밀어주는 착한 손녀다. 요즘 저렇게 착하고 성격 밝은 아이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며 자랑을 늘어놨다.
날씨가 추워지면 민영이의 생활은 더 힘들어진다. 난방비와 각종 공과금만 해도 20여만원이 들어가고, 추운 날씨에 폐지 수집도 힘들어져 수입마저 줄어든다. 입에 풀칠만 하고 살아도 빠듯한 살림이 될 수밖에 없다.
민영이의 소원은 무엇보다 할머니가 아픈 곳 없이 오래오래 사는 것이다. 민영이는 "아빠 엄마가 돌아올 것이라고 기대해 본적이 없다"며 "어른이 돼 키워주신 은혜에 보답할 수 있을 때까지 할머니가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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