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직장을 마치고 퇴근해 집에 오니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가 문 앞으로 달려 나왔다. 반가운 마음에 두 팔 벌려 힘껏 안아보려는 내게 멈칫하며 "엄마, 이제부터는 샤워 먼저 하고, 옷 다 갈아입고 내게로 와 줄래?"하는 것이었다. 최근 확산되고 있는 신종플루 때문에 아들 녀석이 자신만의 예방책을 내놓은 것이다. "맞네, 깜빡했네, 손은 잘 씻고 왔지만 우리 아들 만지려면 그래야겠네"하며 애써 섭섭함을 감췄다.
필자는 현재 신종플루 거점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내원하는 아이들이 확진 검사하러 오는 경우가 많다. 그 중 증상은 미미했지만 양성으로 확진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러다 보니 늘 병에 노출되어 있는 셈. 일 때문에 며칠 저녁 늦게 들어간 사이 아이랑 지내야 하는 시간이 많아졌던 남편이 병에 대해 초등 일학년 수준으로 알아듣기 쉽게 설명한 모양이다. 아이는 자기대로 이해를 한 후 늘 필요할 때 같이 못 있어 주는 엄마가 밉기도 했는지 아빠랑 둘이서 엄마를 왕따시키는 작전에 돌입한 듯했다. '엄마는 접근금지! 요주의!' 라며 나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럼, 우리 문밖에 통나무로 목간 하나 지어놓을까? 집에 들어가기 전에 사우나 하게"라고 농을 거니 "나도 같이 들어가면 안돼?" 하고는 해맑게 웃는다.
요즘은 사람들 사이의 분위기가 살벌하기까지 하다. 모임에서 사레들려 기침만 몇 번 해도 옆 사람들의 의심스런 눈초리를 받아야 한다.
신종플루 때문에 아이들이 커가면서 마음속에 잊지 못할 추억으로 간직될 여러 행사들도 잇따라 취소되고 있다. 가을 운동회도 약식으로 치러지고 단체 공연 관람도 금지되고 있고 수학여행도 취소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신종플루 때문에 우리 아이들의 중요한 황금빛 시기가 밋밋한 무채색으로 남을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몸이 아파 입원한 단짝 친구를 위해 꽃 사들고 문병 와주던 정이 넘치던 모습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이젠 병원 입원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 아이는 한 동안 기피 인물이 된다고 한다.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라지만 꼭 해야 할 경우에는 우선순위를 정해 최선의 방책으로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되도록 진행하는 것도 때로는 필요할 것 같다.
출근길에 자주 듣는 방송의 멘트가 오늘 따라 마음에 와 닿는다. '이 모롱이를 돌면 막다른 골목이 있을 것 같은 느낌, 소신껏 행해도 아무런 탈이 없을 것 같은 느낌, 이번 중요한 시험엔 왠지 아는 문제만 나올 것 같은 마음' 이런 본능적으로 오는 직관이나 직감을 일본에서는 '벌레의 귀띔'이라고 한다. 병의 확산 방지를 위해 모든 걸 안전하게 자제하는 것도 맞겠지만 한때의 유행병으로 인해 더 없이 중요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그것이 소원해진 채 그대로 굳어져 버리는 사회 분위기가 되어 버릴까 염려스럽다.
정명희 (민족사관고 2년 송민재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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