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에 남은 사람은 나밖에 없어요. 뿔뿔이 흩어져 이제는 연락도 제대로 안 됩니다."
용병식(57·사진)씨는 1990년대 후반 들어 극장간판 수요가 줄면서 극장간판 미술가들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고 기억했다. 거의 하루아침에 할 일을 잃은 이들은 제각기 살 길을 찾아 떠났다. 대구에 남은 사람도 있지만 서울로 포항으로 떠난 사람도 있다. 어떻게든 붓을 계속 잡은 사람도 있지만 다른 사업으로 손을 뻗친 사람도 있다.
"평생을 극장에서 살았다"는 용씨는 여전히 영화 바닥에 남아 있다. 한 영화 배급업체의 영업 CEO라는 직함을 달고 활동 중이다. 대구 유일의 예술영화 전용극장 동성아트홀 배사흠(64) 대표도 영화 간판을 그린 전력이 있다. 이주호(49)씨는 경산시 중방동의 경산극장을 인수해 직접 간판을 그리며 마지막 명맥을 이어나갔으나 현재는 찾을 길이 없다.
대부분의 극장간판 미술가는 영화보다는 다른 길을 찾았다. 그 중에서 일부는 미술 쪽으로 투신, 자신의 전공(?)을 살렸다. 미술학원 강사로 나선 사람도 있고, 공모전에 출품해 입상하는 등 전업 작가로 전환한 사람도 있다. 이 중에는 호랑이 한국화로 이름을 날린 C씨, 서양화 풍경으로 맹활약 중인 J씨, 수채화로 유명한 W씨 등이 대표적이다. 식당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한 미술계 인사는 "작가로 활동하는 사람들 중에는 극장간판을 그렸다는 과거를 숨기는 게 대세"라고 전했다. 용씨는 "나랑 비슷한 시기에 그만 둔 60대 이상은 그냥 '쉬고' 있다"고 했다.
조문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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