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골키퍼는 아무리 잘해도 칭찬받기 어려운 포지션이다. 레프 야신(1929~1990)은 달랐다. 철벽 수문장의 신화였다.
1929년 오늘, 모스크바의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12세때 군수공장에서 일하면서 공을 처음 만졌다. 1949년 디나모 모스크바팀에 입단했으나 3년여간 후보로 맴돌다 아이스하키 골키퍼까지 했다. 24세때 부상당한 골키퍼를 대신해 출전하면서 신화가 시작된다.
상대편에게는 큰 덩치(189㎝)를 과감하게 날려 공격수들과 부딪치며 공포감을 줬고, 같은 편에게는 수비라인을 일사불란하게 지휘해 안정감을 줬다. 당시 오프사이드 규칙이 없어 공격수와 골키퍼가 바로 맞서는 상황이 많았지만 공격수들은 번번이 가로막혔다. 거미손 앞에서는 슛할 공간이 없었다. 선수생활 동안 150개의 페널티킥을 막았다. 페널티킥은 키커에게 80%대의 성공률을 보이지만 야신앞에서는 50% 이하였다. 국가대표 경기인 A매치 78회 출장에 70점을 허용했다. 야구로 보면 0점대 방어율이다.
42세때 은퇴하고 사고로 다리를 잃은 지 4년 만에 사망했다. 다리 절단의 상심이 컸다. 현재까지도 그만한 카리스마 있는 골키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박병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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