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부자가 무명화가에게 천만 원을 주겠다며 초상화를 부탁했다. 그러나 그림이 완성되자 마음이 바뀐 부자는 값을 깎자고 했다. 화가는 '언젠가는 천만 원의 10배를 주고 사야 할 것'이라며 거절했다. 몇 해 후 화가는 이름을 날리며 그림값도 비싸졌다. 한 친구가 부자에게 말했다. '전시회에 갔더니 자네와 닮은 사람의 초상화에 1억 원이 매겨져 있는데 그림 제목이 인색한 부자의 초상'이더라며 재미있어했다. 부자는 당초보다 10배의 돈을 주고 살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유머다.
설화와 동화에는 선행을 베풂으로써 보상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많다. 먹고살기 쉽지 않던 시절 부자들의 베풂을 바란 가난한 사람들의 희망을 담아 낸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사주나 풍수에서는 유달리 음덕을 강조한다. 그저 좋은 운명을 타고났다거나 명당을 차지했다고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음덕이 있어야 발복한다며 선행을 말한다. 달도 차면 기우는 순환의 법칙에 따라 강한 것을 누르고 약한 것을 북돋우라며 부라는 강한 조건을 누름으로써 약점을 대비하라고 한다.
독일의 일부 부자들이 스스로 세금을 더 많이 내겠다고 제안했다. 제정신이 아니어서가 아니라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극단적으로 나뉜 사회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게 이유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가진 부를 살아갈 힘을 잃은 사람들과 나누겠다며 부자들의 동참을 권한다.
세계개발센터가 22개 부자나라의 저개발국 지원 기여도를 평가한 결과 한국은 작년에 이어 꼴찌에 머물렀다. 한국은 이웃을 돕지 않는 졸부의 나라라는 것이다. 일본도 이 지표가 발표되기 시작한 이래 늘 꼴찌였다가 한국이 부자나라에 포함되면서 꼴찌를 면했다. 부자나라에 낀 만큼 가난과 사회 불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저개발국에 대한 책임도 높여야 한다며 한일 두 나라의 경쟁을 유도한다.
어제 방한한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국제사회에서의 군사적 기여가 한국의 안보와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며 우리의 기여를 강조했다. 지구촌을 상대로 이익을 얻는 만큼 부담을 하라는 요구다. 가난할 때는 생각하지 않아도 됐던 일들이 부자나라가 되면서 새로 생겨나고 있다. 얻은 만큼 내놓아야 가진 것을 지키고 더 많이 가질 수 있다면 피할 도리가 없는 책임이 아닐까.
서영관 논설위원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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