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암의 공포는 누구나 극복할 수 있습니다."
주부 김순미(60)씨는 10년 전 집안 청소를 하다가 갑자기 허리에 통증을 느꼈다. 한의원을 찾아 침을 맞았지만 계속 배가 아프고 변비와 설사가 반복됐다. 동네 병원에서 진찰을 받았더니 대장염과 치질이라고 했다. 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었다. 배는 점점 더 아프고 대변에 피가 섞여 나왔다.
6개월 동안 약으로 버티다가 계명대 동산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았다. 검사를 끝냈더니 함께 간 언니가 눈물을 흘렸다. 이유를 물었지만 아무 말이 없었다. 영문도 모른 채 입원했다.
"그냥 심하게 장에 탈이 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바로 옆 침대에 있던 여성이 숨져서 남편과 아들이 통곡하더군요. 덜컥 겁이 났습니다. 나도 저렇게 죽는 게 아닌가 하고 의사선생님을 붙잡고 제발 살려달라고 울었습니다."
김씨는 당시 직장암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가족들이 김씨가 충격을 받을까 봐 숨겼기 때문이다. 입원한 뒤 곧 수술을 받았다. 수술이 끝난 뒤 눈을 떠보니 왼쪽 옆구리에 비닐 주머니가 달려 있었다.
어느 날 같은 입원실에 있던 환자가 몇기 암이냐고 물었다. 김씨는 어리둥절했다. 마침 찾아온 가족을 다그쳤다. 그제야 자신이 직장암 3기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김씨는 그저 멍하니 병실 천장만 바라봤다. 수술 뒤 한 달에 한 번씩 항암치료를 받았다. 약을 먹으면 물을 삼키기도 힘들었다. 음식을 먹으면 토하기 일쑤였다.
"정말 살고 싶었습니다. 싱싱한 풋고추와 상큼한 오이를 된장에 찍어 먹으면서 항암치료를 이겨냈습니다."
하지만 곧 '무서운 악마'가 김씨를 찾아왔다. 바로 우울증이었다. 짜증나고 화가 나서 누구도 만나기 싫었다. 우울증의 원인은 '장루' 관리였다. 장루는 항문을 봉합한 뒤 배에 낸 인공항문이다. 항문에는 괄약근이 있어 배변을 조절할 수 있지만 장루는 배변을 조절할 수가 없다.
"장루에서 변이 줄줄 흐르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가슴을 치며 울었습니다. 가족들은 제 모습을 보면서 더 당황스러워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니 더 분통이 터졌습니다."
김씨의 흔들리는 마음을 잡아준 것은 가족이었다.
"짧은 인생이지만 지금부터라도 더 열심히 살자고 굳게 맹세했습니다.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늘 웃는 모습으로 살자고 결심했습니다."
수술받은 지 10년이 지나면서 재발의 공포에서 벗어나고 있다. 여전히 장루 관리는 괴롭지만 이제는 몸의 일부분이 되었다.
"가족들의 도움으로 암을 이겨냈습니다. 저처럼 대장암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봉사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늘 밝게 웃으면서 생활하면 암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김재화(65)씨는 지난 5월부터 갑자기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67㎏이었던 몸무게가 57㎏으로 줄었다. 동네 병원을 찾았더니 위염과 치질이라고 했다. 몇 달 동안 약을 먹었지만 차도가 없었다. 영남대병원에서 다시 검사를 받았다가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위암과 대장암이라는 것이다.
"삶에 대한 애착이 사라졌습니다. 가족도 없었기 때문에 살아야 한다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살도 결심했지만 의사의 권유로 수술을 받기로 했다. 의사는 암을 만성질환으로 생각하라고 했다. 건강검진을 받지 않고 방치하다가 암이 된 것이라고 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도 잘 견뎌냈다. 수술 뒤 밥도 잘 먹고 불편함도 거의 없다. 단지 불편한 것은 임시로 만든 장루였다. 장루 주머니 관리를 잘 못해서 밤에 배설물이 이불을 적신 적도 한두 번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수술부위가 아물면 장루를 없앨 계획이다.
"한개도 아니고 두개나 되는 암이 동시에 생겼을 때는 앞이 캄캄했습니다. 건강검진을 한번도 받지 않은 것이 후회됐습니다. 치료를 열심히 받아 암과 싸워 이길 겁니다."
■대장암 Q&A
서구형 암으로 꼽히는 대장암이 한국에서도 급증하면서 예방과 조기진단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2005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신규 암환자 발병' 통계에 따르면 대장암이 전체 암 발생 중 12.3%를 차지하면서 위암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심민철 영남대병원 외과 교수와 배옥석 계명대 동산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에게 대장암의 예방과 치료에 대해 알아봤다.
▶식습관 변화를
대장암의 예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식사 습관의 변화가 필요하다. 대장암 발병의 90%는 환경적인 요인이다. 우선 지방 섭취량을 줄여야 한다. 총 열량 섭취 가운데 지방의 비율을 20~25%로 낮춰야 한다. 패스트푸드와 인스턴트 식품, 조미료, 훈제식품은 피하고 우유나 신선한 채소, 과일 등을 먹어야 한다.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 가운데 붉은색 육류나 가공육은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닭이나 오리, 생선, 두부 등으로 단백질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 음식을 짜게 먹는 것은 좋지 않다. 흡연자의 대장암 사망률이 비흡연자보다 30~40% 정도 높으므로 담배는 반드시 끊어야 한다. 과도한 음주도 자제해야 한다. 과체중이나 비만을 막기 위한 규칙적인 운동이 필요하다.
▶조기검진 중요
먹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정기검진이다. 대장암은 초기 증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잘 알아차리지 못하고 병을 키울 가능성이 높다. 최근 한국의 대장암 발병 추이를 보면 정기검진에 소홀했던 노년층에서 발병률이 급증했다. 실제로 최근 10년 동안 대장암 수술을 받은 환자 10명 중 6명이 60세 이상 노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대장항문학회가 국립암센터 등 대형병원 6곳을 대상으로 대장암 수술 환자를 조사한 결과, 1999년 1천923명에서 지난해에는 4천791명으로 2.5배 증가했다. 따라서 50세부터는 5년마다, 가족 중에 대장암 환자가 있거나, 염증성 장질환을 앓고 있을 때는 40세부터 대장내시경을 통한 조기검진에 신경 써야 한다.
▶꼭 장루(인공항문)를 만들어야 하나
직장암 환자와 가족들은 인공항문을 만드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강하다. 하지만 요즘엔 인공항문을 만들지 않는 복부 미용수술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직장암 환자의 경우 신체 원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인공항문을 복부에 내지 않는 것이다. 이 수술법은 항문을 절개해 암을 제거하고 손으로 봉합하기 때문에 인공항문을 내지 않고 항문을 살릴 수 있다. 또 복부 절개를 하지 않고 암을 제거하는 수술법도 등장해 복부미용효과를 거두고 있다.
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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