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外高 문제 방치, 정책 당국의 직무유기다

▲김병주(영남대 사범대학장)
▲김병주(영남대 사범대학장)

최근 때아닌 외국어고 마녀사냥 논쟁이 뜨겁다. 논란은 일부에서 외고 입시를 사교육비 증가 원인으로 지목하는 게 마녀사냥이라면서 시작됐다. 이에 대해 정두언 의원은 "마녀사냥이란 마녀가 아닌 사람을 마녀로 몬다는 얘기지만, 외고는 분명히 마녀"라고 말했다.

외고생은 전체 고교생의 1.3%에 불과한 반면 언어, 외국어, 수리영역이 모두 1등급인 수능 최상위권 수험생의 20%를 차지한다. 최근 5년간 최상위권 수험생을 가장 많이 배출한 고교 상위 10곳은 자립형 사립고인 상산고를 제외하고는 모두 외고였다. 이쯤 되면 외고의 질높은 교육에 오히려 박수를 쳐주는 게 맞을 듯하다. 하지만 박수보다 비난의 소리가 높은 게 사실이다. 이는 크게 다음 네가지에 근거한다.

첫째, 외고는 특목고 열풍과 사교육의 중심에 있어 왔다. 지난달 조사에 의하면 중학교 입학 이후 특목고 입시준비를 시작한 경우는 77.7%, 초등학교 때부터 했다는 부모도 20.7%나 됐다. 수도권 외고생의 84.4%는 입학 전 특목고 전문학원에 다녔으며, 91.6%는 외고 재학 중에도 1년 내내 사교육을 받고 있다고 답했다.

둘째, 외고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사교육비는 덤이고, 사립외고의 연간학비는 1천만원에 달한다. 여기에 현장학습비 등이 추가로 들어간다. 그러나 학비 때문에 힘들어하는 가정은 얼마 안 된다. 넉넉한 집안의 아이들이 사립외고로 몰려들기 때문이다. 이들은 결국 명문대 진학과 중산층 및 특권층으로 재진입한다.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접근이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셋째, 외고는 새로운 학벌의 진원지로 부상하고 있다. 고교생 중 외고생의 비율은 1.3%, 과학고와 자사고를 포함하면 2%에 이른다. 비평준화 당시 일류 명문고 출신이 2% 내외였음을 감안하면 사실상 평준화 이전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나마 과거의 학벌은 계층 배경이 다양한 사람으로 이뤄졌지만, 외고라는 새로운 학벌은 중산층 출신자로 이뤄져 있다. 이들은 법조계와 관계 등 권력층에서 새롭게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지속될 때 사회구조의 양극화는 심해질 것이다.

넷째, 외고는 왜곡된 교육과정 운영의 중심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6공에서 고교평준화 해제의 대안으로 도입된 외고 설립의 원초적 동기는 '선발 엘리트'의 지위유지 욕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외고는 태생적으로 입시 위주의 교육을 지향할 수밖에 없었다. 외고가 표면상으로는 '어학영재' 양성을 설립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정책 당국은 어학영재의 의미나 판별방법 개발에는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내신성적을 선발 기준으로 제시하고 나섰다. 외고의 태생적 한계는 곧바로 운영상의 왜곡으로 이어졌다. 구술고사라는 이름으로 사실상의 필답식 입학고사를 치르거나 이중적인 수업시간표를 편성, 운영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외고 중 상당수는 이과반까지 운영해왔다.

물론 외고가 그동안 평준화 체제에서 수월성 교육을 보완하는 역할을 해 온 공로는 인정받아야 한다. 외고가 사라져도 사교육비가 크게 줄어들지는 않을 수 있다. 근본적으로 외고 입시의 과열은 보다 나은 대학에 들어가려는 욕구가 반영된 것이며, 대학의 서열은 여전히 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고가 수월성 교육에 기여했다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외고생은 대부분 중학교 때 수위 졸업자이다. 이들은 수능 최상위권에 도달할 수 있는 자질을 가진 학생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외고에 입학하여 수능 최상위권에 이르는 비율은 학교에 따라 5~30%에 불과하다. 심리학적으로 우등생과 열등생의 학습하는 태도는 달라진다. 중학교 때 우등생의 모습을 보이던 수위 졸업자가 외고에 진학하여 중하위권으로 전락하면, 상대적으로 우등생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포기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사정이 이러하기 때문에 정두언 의원은 외고를 추첨방식으로 선발하는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하자고 하였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의원 21명 중 17명이 외고의 개편·폐지에 찬성하고 나섰다.

외고를 자율고로 전환하는 방법은 극단적인 처방이라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영어듣기 평가 폐지 등 입학전형 개선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학부모와 사교육 시장은 언제든 새로운 입시제도에 적응하기 때문이다. 어떻든 외고에 대해 변화가 필요하며, 교육당국이 외고 문제를 방치하는 것은 직무유기를 하는 것이라는 점에는 많은 이들이 동의할 것이다.

외고가 사교육 심화의 주역이라는 문제는 미시적인 것이다. 문제는 사회전반의 학벌 및 학력주의 풍토이며, 외고의 현실이 그러한 풍토에 기름을 끼얹는다는 것이다. 학벌사회에 대한 사회 전반의 각성과 반성 분위기가 형성될 때 외고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될 것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