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즐거운 책 읽기

가끔 어린 시절을 이야기할 때 만화방을 빼놓을 수 없다. 만화방은 학교 운동장과 함께 유년 시절 중요한 여가의 한 공간이었다. 10원을 내면 낱권 6권을 보거나 3권짜리 제본용 만화책 2권을 볼 수 있었다. 10원으로 만화를 보는 양은 너무 적어서 점점 만화방 구석 자리로 옮겨가 주인 아저씨 몰래 10원어치보다 더 많은 만화책을 보기 일쑤였다. 만화방 주인 아저씨는 그걸 알면서도 단골 고객이어서인지 모른 척해줬다.

1970, 1980년대에는 '불량 만화'가 많이 질타를 받았었다. '우량 만화'는 잘 인쇄된 종이에 대사와 지문 등 글이 많은 반면 '불량 만화'는 그렇지 않다는 '기준'도 있었다. 어린이 잡지에 나온 만화는 '우량 만화'였고 만화방의 만화는 상당수가 '불량 만화'에 해당됐다.

그러나 당시의 '불량 만화'가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금 생각해 보니 '우량 만화' 못지않게 '불량 만화'를 통해서도 어휘가 느는 등 도움이 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최근 1970년대와 1980년대의 만화를 회고하고 평가하는 책들이 나오고 있는데 '꺼벙이'의 길창덕, '독고탁 시리즈'의 이상무, '공포의 외인구단'의 이현세 등이 높은 평가를 받는 반면 '불량 만화'의 만화가들은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2차 대전을 배경으로 미군과 독일군의 전투를 주로 다룬 이근철, 또 다른 전쟁 만화를 즐겨 그린 권웅 등의 만화가가 그들보다 못할 이유는 별로 없었다.

어린 날의 열정적인 만화 탐닉과 함께 한자가 많이 들어가 있는 성인용 삼국지, 정비석의 홍길동전, 보물섬, 암굴왕, 철가면 등 아동문고 시리즈 등을 읽었고 독서보다는 공부를 많이 해야 했던 청소년기를 지나 스무 살 넘어서면서부터 손창섭, 이문열 등의 소설, 김용의 무협 시리즈 등을 열심히 읽었다. 역사'인문 분야의 책도 많이 읽었다. 교양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 재미있기 때문에 읽었다. 어린 시절 '우량 만화'와 '불량 만화'를 볼 때도 재미있기 때문에 읽었듯이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읽을 책을 정할 때도 첫 번째 조건은 '재미'이다.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마음의 양식을 얻지 못하더라도 성공인 것이다. 또 재미있게 책을 읽다 보면 대부분 마음의 양식을 얻게 된다. 대학 재학 시절에 요구되던 이른바 '이념 서적'이나 인문서는 마지못해 읽거나 읽는 데 실패했다.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책은 읽든 읽지 않든 항상 가까이하는 것이 좋다. 가방에 2, 3권 이상의 책을 넣어 다니거나 집에서도 책을 가까이 두는 게 좋다. 그렇지만 그 책이 모두 재미있지는 않다. 재미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읽어보니 재미없는 책들은 갖고 다니다가도 제대로 읽지 않은 채 책꽂이로 향하게 된다. 사실 재미있는 책을 만나는 일이 쉽지는 않다.

시행착오를 꽤 겪은 후에야 주로 저자 중심의 기준이면 실패할 확률이 적다는, 재미있는 책을 찾는 노하우를 얻게 된다. 그것은 베스트셀러 위주로 책을 고르는 기준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재미를 안겨 준다. 어찌 됐든 항상 책을 가까이하더라도 궁합이 맞지 않는 책들이 많으며 그러다가 재미있는 책을 만나게 되면 횡재한 듯 반갑다. 그 책을 읽는 동안은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미있는 책을 찾기 위해서는 공을 들여야 하며 독서가들은 나름대로 읽을 책을 정하는 방법을 갖고 있다.

어느 작가의 책들에 열렬히 빠지다가도 어느 순간 순식간에 애정이 식기도 한다. 김용의 무협 소설이나 스티븐 킹의 초자연적 스릴러물이 그렇다. 이런 책들은 애정의 유효 기간이 지나면 놀랍게도 시시하게 느껴진다. 연령대별로 재미있는 책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책을 읽는 것은 재미있는 TV 프로그램을 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흥미진진한 스포츠 경기를 보는 것만큼 재미있다. 밤이 깊어가는 계절, 마음의 양식을 얻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즐겁게 살기 위해 책을 가까이하는 것이 좋다. 그런 점에서 바쁘거나 혹은 관심이 없다는 이유로 책을 가까이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의 큰 삶의 즐거움을 모르는 채 사는 것과 같다.

김지석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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