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후배를 만나 이런저런 근황을 나누는데 결혼상대로 한 사람을 소개 받았는데 궁합이 맞지 않아 양가에서 반대하고 있다는 꽤 심각한 얘기를 덤덤하게 들려주었다. 그녀는 고학력, 고소득의 자신만만한 알파걸이지만 혼기를 놓친 소위 말하는 노처녀다. 궁합 타령을 하는 걸 보니 콧대 높은 이 골드 미스가 제대로 눈에 차는 상대를 만난 모양이다.
남편과 처음 만난 나의 이십대가 생각이 난다. 이십대는 젊음과 패기가 넘치는 인생의 꽃이라 하지만 아무것도 결정되어 있지 않아 불안하고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하는 혼동과 두려움이 자리 잡은 격동의 시기이기도 하다. 나의 이십대는 분명 그러했다. 의과 대학 졸업 후 국가고시, 인턴, 레지던트 시험, 석사 박사 시험, 전문의 시험 등등 끝이 없어 보이는 시험의 연속은 이십대 꽃다운 나이의 아가씨에게 꿈을 꾸더라도 시험지를 앞에 두고 재시를 걱정해야 하는 초라한 입시생으로 전락시켰다.
인턴 레지던트 수련의 기간에는 잠이 모자라고 배고파야 하는 기본적인 욕구의 궁핍함을 겪으면서 가슴 설레며 결혼 상대를 만날 정신적인 여유가 없었다.
이런 와중에 주변에서 지금의 남편을 소개 해주었다. 소개 받을 당사자가 싫은 것이 아니라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는 철없던 시절이라 그 만남을 무조건 거부 했었다. 주변의 강권에 의해 나가긴 했으나 시큰둥하고 무미건조하게 첫 만남을 가졌다.
어색하고 빈약한 대화를 최근에 본 영화, 읽은 책 따위의 유치한 질문으로 간간이 이어가고 있었다. "요즈음 바빠 책 못 읽고요, 화장실 갈 때 일간 스포츠 따위의 가벼운 신문으로 활자를 즐기고요, 그중에서도 제일 가벼운 '오늘의 운세'난을 먼저 봐요" 라고 싱거운 대답을 했던 것 같다.
며칠 후 화상 병동에서 온몸에 화상을 당한 아줌마의 전신 갑주처럼 둘러진 붕대를 힘겹게 풀고 있는데 전화 받으라는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환자아줌마도 통증에 시달리다가 잠시 쉬고 싶었는지 빨리 받고 오라고 종용한다.
전화선 너머로 며칠 전 처음 만났던 지금의 남편 목소리가 씩씩하게 들려온다. "오늘 정선생 오늘의 운세를 보니 동쪽에서 귀인이 올 운세네요! 나를 만날 운세라고요! 응급실 앞에서 기다릴게요. 선배가 기다린다고요" 오늘 비번이란 정보를 입수했던지 거절도 못하게 선배의 권위를 섞어 일방적으로 약속을 정했다.
그리고 인연이 되었던지 이 세월까지 한 이불을 덮고 있다. 그 흔한 사주나 궁합 한 번 보지 못한 크리스천 가정이지만 상황이 이러하니 우리의 결혼의 중매는 적어도 '오늘의 운세'임에 틀림이 없다.
이모네는 육남매가 있다. 그중 두 형제는 상대 가문에서 열심히 궁합을 보고 최상급 인연으로 판정이 나서 화려한 결혼식을 했건만 한 가정은 부도나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한 가정은 끊임없이 다투어 주변 가족들이 보기가 민망하다.
고민하는 우리 후배에게 이모네 가족사와 함께 나의 얘기도 곁들어 주었다. 궁합도 안 보고, 역술인의 도움없이(?) 우리끼리 길일이라 여기며 결혼식 올리고도 잘 살고 있으니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용기 내어 궁합을 극복하라고 격려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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