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부](11)진성 이씨 노송정 종택 최정숙 여사

"종부는 큰 주부일 뿐" 40년 세월을 한결같이'''

눈이라도 흠뻑 내릴 듯 한 겨울이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 회사 점심시간을 이용해 선을 보게 됐다. 아직 결혼에는 관심도 없었고 더욱이 종손이라니. 아버지께서 하도 사정해서 얼굴이나 보고 나오겠다는 심정이었다. 그 자리에는 훗날 시조부와 남편이 있었다. 어른에 대한 예의로 밥 한 끼 먹었다. 그것뿐이었다. 그런데 안동 도산 온혜 진성 이씨 노송정 종택 18대 종부 생활은 이미 그날 시작됐다.

◆ "사실 종가며느리 되고 싶지 않았지"

노송정 종택 종부 최정숙 여사. 사실 그녀는 종가 며느리 같은 것은 되고 싶지 않았다. 평생 종부로서 살아온 어머니. 그 길을 그녀가 갈 것이라 생각도 못했고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종손과의 선 자리는 어머니께서 극구 반대하셨다. 성주 법산 영천 최씨 집안의 종부로 살아온 어머니는 자신의 이름을 잃은 채 낯선 집안 종부로 불리는 삶을 딸에게 물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바꾼 것은 아버지의 뒷모습이었다. 선 자리를 뒤로 하고 나오는 길목에서 딸의 혼사가 잘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추운 겨울 햇볕에 손을 녹이며 그 오랜 시간 벌벌 떨고 계신 아버지를 보았다. 안쓰러운 그 뒷모습으로 그녀의 운명은 결정된 듯했다.

◆숟가락만 300개 넘어

그렇게 혼인을 하고 시댁으로 가는 신행길. 참으로 길고 먼 길이었다. 첫날부터 아버지의 짠한 뒷모습이 원망스럽기 시작했다. 도시 생활에 익숙해 있던 그녀에게 전기로 사용하는 도구 하나 보이지 않는 시댁은 숨이 턱 막히는 산과 같았다.

며칠 지나지 않아 그녀는 알게 됐다. 여기는 숟가락만 300개가 넘었다. 모두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한 것이었다. 사촌 팔촌 친척들은 물론 지나가는 나그네들까지 이 집을 찾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그냥 보내지 않는 마음. 종가 며느리에게는 그 어려운 마음이 필요했다. 한번은 지나가던 일본인 부부가 노송정이 마음에 든다면서 한참을 보고 가더니 종종 편지를 보내왔다. 그러다 어느날 이 일본인은 어떻게든 꼭 여기서 하룻밤 자고 싶다며 일본인 100여명을 데리고 왔다. 한껏 들뜬 눈빛으로 방 구석구석 자기 자리를 찾아 들어가는 100여 명의 일본인. 그래도 종가 며느리는 군말 없이 아궁이에 불을 땠다. 그리고 그 다음 아침을 준비했다. 그저 찾아오는 손님을 외면할 수 없어서였다. 어느덧 시어머니께서 묵묵히 하시던 그 일이 그녀의 일이 됐다.

◆일은 할 수 있는 만큼 주어지게 마련

그래도 신기한 것은 그녀가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사람이 할 수 있는 만큼 일이 주어지지, 할 수 없는 일은 애초에 주어지지 않는다 생각했다. 이런 마음은 시어머니가 60대 젊은 나이에 중풍에 걸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시동생들은 형수가 힘들 것을 걱정해 시어머니를 병원으로 모실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그녀는 시어머니를 돌보는 일이야말로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차라리 3년상을 못할지라도 살아계신 동안은 내 손으로 모실 겁니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시어머니 살아계신 동안은 물론 돌아가신 후에도 3년을 모셨다.

"이것도 내 일인 거지." 그저 이 한마디뿐 억울함이나 서운함은 없었다. 죽을 만큼 힘든 일도 없지만 그렇게까지 느껴질 정도로 힘들 땐 나에게 맡겨진 책임을 생각하면 못할 일이란 없는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생각해 보니 그녀는 지금 종부로 살아온 인생이 참 뿌듯하다고 한다. 그녀는 단지 100원어치 노력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항상 1천원어치나 인정해준다.

그녀가 생각하는 종부란 도대체 누구일까?. "종부는 마음을 닫지 않고 다 여는 사람이죠."

해마다 김장할 때는 동네 어르신들을 다 부른다. 갓 담근 김치로 다같이 식사를 하고는 그것도 모자라 두 포기씩 포장해서 손에 가득가득 들려 보낸다. 종부는 손 안에 뭐라도 쥐고 있으면 마음이 불편한 존재다. 어느 것 하나 내 것이다 고집하지 말고 다 열어두어야 종부다. 그래서 그녀는 노송정에 머물 땐 집 문을 닫지 않는다. 누구라도 와도 좋고, 누구라도 두드려도 좋다. 오는 사람들이 좋고 부르는 사람이 고마울 뿐 사람들과 어울리는 그 시간이 그녀에겐 종부 삶에 대한 보상이다.

◆환갑 나이도 안돼 가문 책임져야

그런 그녀에게도 두려운 시간이 있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그녀는 덥석 겁이 났다. 한번은 시어머니를 거쳐 오던 집안 어른들의 시선이 그날 모두 자신에게 모여 있는 것을 느꼈다. 그녀 나이 60도 되기 전에 가문을 책임져야 하는 진짜 종부가 됐다. 10년은 더 있어야 올 것이라 생각했던 그녀는 그날, 손발 묶인 소 한 마리를 업은 듯했다.

"시어머니는 생전에도 집안일에 전혀 간섭하는 법이 없으셨어요. 모든 일을 믿고 맡기는 편이었죠. 그런데도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시니까 아무 일도 못하겠는 거예요."

그녀가 이 두려움을 이겨낸 것은 문중 어른들의 격려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인품이 좋으신 분들이다. 그저 열심뿐인 그녀를 진심으로 인정해 주셨으니 그녀가 더 이상 두려워할 것이 없었다. 종부는 혼자 성장하는 것이 아니었던 게다.

◆어린 아이들 때밀어줄 때가 가장 행복

25세에 시집와서 어언 40년이 지났다. 그녀 곁에 머문 사람들에게 문득 고마운 마음이 든다. 딸을 종가에 시집보내겠다며 추운 겨울 호호 거리시며 기다리던 아버지가 고맙고, 어설픈 새댁 종부에게 잘한다 잘한다 응원해 준 시어머니가 고맙고, 노송정이 좋다며 100명의 일본인 친구를 몰고 온 일본인 부부가 고맙다. 그 모든 사람들이 오늘 진성 이씨 노송정 18대 종부 최정숙을 만들어준 주인공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오늘도 같은 자리에서 늘 같은 마음으로, 그녀를 찾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종부니까.

KBS안동방송국 이형일 PD hyeongil@kbs.co.kr

안동'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