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들의 스토리는 다양하고 방대한데 문화 담당자들을 거쳐 대중들에게 직접 연결되기 위해서는 현대어로 번역,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야담은 현대화하면 독서 문화를 풍성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영화, 연극, 온라인게임 서사 등으로 활용될 가치를 충분히 담고 있습니다."
26일 영남대 사범대 신관 연구실에서 이강옥 국어교육과 교수를 만났다. 온갖 자료와 문헌, 서적들이 사방을 가득 채운 연구실은 작은 도서관을 방불케 했다. 작은 덩치에 낮은 목소리지만 꼿꼿함이 풍기는 이 교수에게서는 선비의 풍모가 배어났다.
"야담에는 아라비안나이트 못지않은 서사구조와 상상력, 인생에 대한 고민과 지혜가 담겨 있다"고 강조하는 그는 30년 가까이 야담 연구에만 몰두해온 외곬이다. 석사논문을 쓸 때부터 야담을 연구한 그는 당시 근대소설의 개념으로 읽어갔다. 읽기를 계속할수록 드는 의문은 '어떤 작품은 근대소설 범주에 들어가는데 상당수는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처음엔 우리 민족서사의 빈약함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죠. 그때 조선은 근대소설을 만들어낼 역량이 없는데 서구의 근대소설을 먼저 받아들인 일본이 조선을 도왔다는 식민사관이 떠올랐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소설적 요소를 찾아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교수는 1996년 미국 예일대 교환교수로 갔다가 실마리를 풀었다. 아라비안나이트를 비롯한 서구 서사를 공부하면서 야담과 비교분석을 시작한 것. 그는 짧은 이야기 속에 세상을 포괄하고 얘기치 못한 경험을 하는 등 여러 측면에서 양자가 유사하지만 야담에는 서구 서사에 없는 현실화 과정이 존재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아라비안나이트를 읽으면 환상적이고 기발하지만 현실감이 없습니다. 하지만 야담은 기이한 내용 속에 현실의 문제의식을 포용하고 해결책을 보여주는 마무리가 있죠. 기이의 현실화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야담은 짧고 구조가 단순한데 복잡한 현대에 맞느냐는 질문에 그는 "현대사회에 부족한 낙관성과 자기애, 타인에 대한 배려 등의 미덕을 담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현대에 필요한 장르"라고 설명했다. 최근 문학작품들이 인간관계와 사회구조의 부정적 측면을 간파해 비판정신을 고취하고, 비극적 결말을 통해 비인간적 현실에 문제를 던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얘기였다.
"비판정신도 필요하지만 인생은 살 만한 것이고 따뜻한 시선으로 자기와 타인을 바라보게 만드는 작품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야담은 그런 면에서 다양하게 재생산될 수 있는 모티브의 바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달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우수학자로 선정돼 앞으로 5년 동안 1억5천만 원의 국비를 지원받아 '한국 야담의 가치와 활용' 연구를 수행한다. 야담의 성립과정과 문화적 역할-야담의 제재와 서술미학-비교문학적 탐색-야담의 가치와 활용 방안 순으로 연구를 해나갈 계획이다.
"연구과제 하나를 수행하는데 5년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야담을 평생의 연구과제로 정한 저로서는 끝이 언제일지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 야담이 우리 서사의 원천으로서 문학교육 텍스트로 활용되고,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다시 태어나 또 다른 한류를 일으키는 데 앞장설 수 있도록 온 힘을 쏟을 작정입니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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