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잊혀진 계절' 왜 10월의 마지막 밤일까

박건호씨 첫 작품엔 '9월'…앨범 발매시점 맞춰 '10월'로

9, 10, 11월 가을 중 10월 마지막 날은 가을의 절정이자 늦가을의 초입. 온 산이 단풍으로 울긋불긋 물들었다 11월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기온이 떨어지며 날씨가 쌀쌀해진다. 자연의 기운이 한창이다가 어느덧 움츠려 들 채비를 해야하는 시점.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1년이 이렇게 또 가는구나'라고 회상에 젖어들 때면, 그동안 살아온 세월도 반추해보게 된다. 첫사랑이 떠오르고, 과거 낭만적인 일들이 스치는 것은 당연한 일일 터. 이렇듯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선 자연도 10월의 마지막 밤을 '낭만의 밤'으로 이끌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이에 더해 가수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 결정타를 날렸다. '울고 싶은 놈 뺨 때려준 격'이라면 지나친 표현일까.

♬지금도 기억하고 있나요/시월에 마지막 밤을/뜻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우리는 헤어졌지요/(이하 생략)♬

오늘밤 커피 한잔을 마시며 혼자 생각을 정리하다 한 번 들어보라. 애잔한 기억들이 절로 머릿속에 떠오르며 30분~1시간 정도는 그 기억으로 빨려들어갈 것이다. 이 노래는 이미 10월 대표곡이자 가수 이용이 국민에게 준 큰 선물이다.

하지만 '잊혀진 계절'의 작사가이자 시인인 박건호씨의 사연은 '9월의 마지막 밤'이라고 한다. 작사가인 박씨는 9월의 부슬비가 내리는 밤에 술을 못하는 체질임에도 두 홉들이 소주 1병을 비우고, 그동안 만났던 여성 가운데 유일하게 대화가 통했던 여성과 이별하기 위해 단 한마디 '정아씨 사랑해요'라는 말만 하고 영영 헤어진 것.

이날의 기억이 '잊혀진 계절'이란 명곡의 가사 모태가 됐다. 항상 버릇처럼 '쓸쓸한 표정'을 짓는 그녀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할 무렵, 그는 '오늘밤 그녀와 헤어지면 다시는 만나지 않으리라'고 다짐한 게 주내용.

1982년 초가을 무렵, '그날의 느낌'을 새겨넣은 가사는 작곡가 이범희씨에게 넘겼다. 그가 이 가사를 쓸 무렵은 마음이 몹시도 춥고 외로웠다고 한다. 그에겐 차라리 '잊고 싶은 계절'이었다. 젊음의 열병과 사랑의 시련, 그리고 현실적인 장벽이 그의 섬세한 감성을 한없이 짓밟았다. 하지만 우연찮게도 이 레코드 발매시점 때문에 가사는 '9월이 아닌 10월의 마지막 밤'으로 바뀌었다.

권성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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