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헌법재판소의 몇몇 판결들이 개인적으로는 참 마음에 들질 않는다. 민주당 편드는 얘기가 될지도 모르나 이번 미디어법 유효 판결은 법리(法理)적인 설명이야 어찌 됐건 뒷맛이 찜찜하고 명쾌함이 모자라 보인 판결이다.
구구한 논란은 덮자. 법치주의 나라에서 개개인의 정서나 법감정과 동떨어진 판결이라고 헌법기관의 권위를 부정하고 무시해서는 안 되는 거니까. 그러나 학생들의 심야학원 교습시간을 제한하는 정부 조치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것은 아무리 헌재를 존중하더라도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사설학원들을 옹호하는 얘기냐고 오해해도 어쩔 수 없다. 한마디로 헌재가 내놓은 합헌 이유들은 사교육 현실을 도외시한 공론(空論)으로 들린다.
헌재가 말한 합헌 이유를 보자. 첫째 심야학원 수업의 단속은 학생들의 수면과 휴식 시간을 확보해 준다는 논지인데…. 헌재 재판관들께서는 입학사정관제가 생기면서 서울 지역에 신종(新種) 과외교사가 재빨리 등장한 걸 모르셨나보다. 입학사정관 신종과외란 성적 외에 과외 특기활동, 봉사활동 등을 참고하는 입시 사정 채점 프로그램을 겨냥, 몇 시부터는 어느 봉사조직에서 무슨 무슨 활동을 시키고, 어느 요일엔 어디 어디 가서 활동케 하는 사정 예상 항목에 짜맞추는 초고액 맞춤식 과외지도다. 그야말로 눈이 핑핑 돌게 진화되는 사학 시장 바닥에선 학원이 일찍 문 닫으면 밤샘해서라도 명문대 가겠다는 아이나 부모 그룹은 금세 더 값비싼 '밤 11시 이후 담당강사'를 따로 둬서라도 과외를 하게 돼있다. 심야수업만 단속하면 학부모 사교육비 부담도 덜어진다는 헌재의 말씀은 현실과 따로 겉돌고 있는 거다.
'단속이 사교육 기회의 차별을 최소화하는 목적이므로 정당하다'는 편견도 납득이 어렵다. 밤 11시까지만 여는 것과 밤 12시 이후까지 열었을 때와의 시간 차가 어떤 인과관계로 사교육 기회의 차별을 최소화시킨다는 얘긴가. 학원 갈 기회 자체도 없는 어려운 집안 아이들에겐 심야과외 한두 시간 줄이든 늘리든 기회와는 아무 관계도 없다. 기회 차별은 경제나 양극화의 문제지 시간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비현실적인 단속 만능의 부작용은 또 예견해 봤는가? 이미 전국 사설학원 강사 숫자는 49만 명이다. 정규 초'중'고 교사 39만 명보다 10만 명이 더 많다. 하루아침에 과외학원을 없애버린다고 해보자. 당장 49만 명의 생짜 실업자가 쏟아진다. 업무보조직원, 학원차량기사, 가족들까지 치면 그 파장은 장난이 아니다. 그것뿐인가. 전국의 크고 작은 업무용 빌딩들 중 학원 간판 안 붙은 건물이 몇 %나 되나. 일시에 학원들이 빠져나오면 빌딩 건물주들은 당장 공실(空室)의 전세'월세가 끊기니 빌딩 지을 때 빌린 대출금 상환길이 막힌다. 수천, 수만 빌딩들의 부실은 금융권의 부실채권 문제로 이어지고, 4조 원 가까운 학원기업 등 교육 관련 주식들의 주가도 곤두박질치며 증시가 흔들리게 된다. 어느새 사학시장이 간단히 칼을 댈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공룡이 돼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MB정부는 전(前) 정권의 평준화는 비판하면서 거꾸로 외고(外高)는 개편하겠다는 등 너무 가볍게 교육정책을 말한다.
교육에서 단속과 규제 위주 정책은 거의 다 실패해 왔다. 그보다 39만 명 공교육 교사들의 사기부터 살리고, 어떤 대학을 나오든 열심히 공부만 하면 다 취업 되는 나라 구조부터 만들어라. 이쑤시개로 곤장 때리듯 실효 없는 학원 단속에 열 내는 시간에 그런 큰 비전에 올인하는 게 사학 정상화의 왕도(王道)다.
그리고 학생은 공부를 해야 한다. 옆 친구는 물론 세계와 무한 경쟁해야 하고 그 고통은 땀과 인내로 견뎌야 한다. 당연한 과제다. 아이들에게까지 경쟁의 고통 없이 편하고 쉽게만 해주겠다는 정책은 또 다른 포퓰리즘이다. 어릴 때 공부 고생은 사서도 시켜야 한다. 학교서든 학원에서든 '당신이 졸고 있는 순간에도 적들의 책장은 넘어가고 있다'고 한 하버드 대학 도서관의 면학정신을 가르쳐야 한다는 말이다. 그나마 어른들의 조령모개식 교육정책에도 잘 견뎌주는 아이들이 차라리 고맙고 대견하다.
金 廷 吉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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