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나라 안팎을 연방 놀라게 하고 있다. 지난 2/4분기에 2%대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더니, 이번 3/4분기에도 전기 대비 성장률이 2.9%로 아무도 예상치 못한 '깜짝 성장'을 달성한 것이다. 한국 경제가 그 어느 나라보다 잘나가고 있다고 해서 시름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국내 고용이 좀체 늘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실업률 통계상으로 보면 고용 사정이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연초에 크게 올랐던 실업률이 하반기부터는 지속적으로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실업자 수가 한때 100만 명까지 육박했으나 지금은 80만 명대로 줄어들기도 했다.
고용이 수치상으로 조금씩 늘고는 있으나 그 내용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일단 증가 폭이 너무 미약하다. 연초부터 7월까지 국내 고용 시장에서는 매월 10만 명이 넘는 일자리가 사라졌다. 하지만 이후 늘어나는 수치는 8월 3천 명, 9월 7만 명에 불과하다. 더욱 염려스러운 내용은 늘어나는 취업자가 대부분 정부의 한시적 재정 지원책에 힘입고 있다는 점이다. 종사자 지위별로는 임시 근로자가 크게 늘고 연령대별로는 50대 이상에서 일자리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 이의 단적인 증표다. 정부 재정 증가에 따른 인위적 고용 증가 현상은 산업별로 파악해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민간 기업이 주도하는 제조업과 건설업의 신규 취업자 수는 하반기에 들어서도 계속 줄고 있는데, 공공행정 서비스 부문은 하반기 이후 크게 늘고 있다. 요즈음에 그나마 실현되고 있는 소폭의 고용 증가 현상은 정부 재원이 고갈되면 한순간에 사라지는 신기루와 같은 허망한 것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고용 없는 경기 회복' 양상은 당분간 지속될 우려가 크다. 일단 국내 산업이 노동 절약적 구조로 전환되어 경기가 회복된다 해도 단기간 내에 고용이 늘어나기 힘든 근본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게다가 고용을 늘리는 원동력인 기업의 설비 투자가 여전히 감소 중이다. 한번 줄어든 고용은 웬만해서는 다시 원상태로 회복하기 힘들다는 고용 시장의 '이력(履歷'hysteresis) 현상'도 작용할 것이다. 고용 부진은 국내 경제 사회 곳곳에 다양한 아픔을 낳고 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이 '청년 실업'이 해결되지 않으면서 국내 젊은이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는 점이다. 실업 해소 대책 세미나에서 만난 어느 대학생은 국내 유수한 대학을 나와도 취업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며 그들의 절망감을 표출했다. 고용 불안이 청년들의 앞날에 대한 꿈과 이상을 앗아가고 있는 것이다. 여성 취업자들도 고용 감소로 인한 최대 피해자 중 하나다. 경기 침체로 여성의 일자리가 남성보다 더욱 두드러지게 감소하고 있는 까닭이다. 무엇보다 통계상으로 자영업 일자리가 사라지는 추세는 너무나 가팔라 눈사태처럼 순식간에 허물어지는 양상이다. 국내 자영업은 지난 외환위기 당시 대기업이나 금융 기관 등에 속해 있던 근로자들이 대거 실업자로 내몰림에 따라 급속히 늘어났다. 그런데 이번에 또다시 자영업이 경기 침체의 충격을 가장 크게 받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고용 침체 양상은 연령별, 성별, 계층별 소득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행복감이나 소속감의 격차를 확대시켜 자칫하면 경제 사회 갈등과 대립을 증폭시킬 소지를 키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고용을 동반하는 경기 회복' 정책이 성공적으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이의 기본 토대가 되는 투자의 중요성과 시급성에 대해 정부나 기업 그리고 노조와 사회단체들이 완전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정부는 기업들의 투자를 늘리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데 온 정성과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포괄적인 규제 해소보다는 기업 투자 프로젝트별 맞춤형 규제 철폐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국내 기업도 불확실성과 가상 위험을 무릅쓰고 과감히 투자를 하여 새로운 사업을 성장시키는 과거의 '성공 신화'를 지속적으로 창출해 나가야 함은 물론이다. 노조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확충하려고만 하기보다는 기업들이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갈 수 있도록 최대한 안정적인 경영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사회 단체 역시 기업의 최대 사회 공헌은 일자리 창출에 있음을 인정하고 일자리를 늘리는 기업에 대한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일자리가 부족한 경제는 구성원 간의 경쟁을 가열시키고 불신과 분열을 조장하여 그 누구도 행복할 수 없는 사회로 전락시킨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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