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행거리 조작 차량이 중고차 시장을 어지럽히고 있다. 주행거리를 줄여 중고차 몸값을 부풀리는 이른바 '메다방'이 독버섯처럼 퍼지고 있는가 하면 폐차 직전 영업용 택시가 미터기 조작을 통해 멀쩡한 중고차로 둔갑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중고차를 구입할 경우 등록증, 전산 조회 등을 통해 차량 정보를 꼼꼼히 따져 봐야 한다.
◆주행거리 조작 봇물
'2003년식, 00525V 튜닝카, 주행거리 4만3천km, 무사고.' 최근 1천300만원에 중고차를 구입한 김인철(35)씨는 차량 정비소에 들렀다 황당한 얘기를 들었다. 김씨 차를 본 정비공이 대뜸 '속아 산 차'라고 했던 것. "차 껍데기는 20대 청춘이지만 엔진은 70대 노인이라 했어요. 튜닝카로 유명했던 차라며 적어도 20만 이상은 뛴 차라더군요."
중고차 시장에서 주행거리 조작이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주행거리가 짧을수록 차량 값을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구경찰청은 지난주 주행거리를 조작한 중고차량을 판매해 2억여원의 부당 이득을 챙긴 혐의로 중고차 상사 업주 등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주행거리 28만㎞짜리 그랜저 승용차를 8만㎞로 조작한 뒤 시세보다 300만원 비싸게 파는 등 중고차 200여대의 주행거리를 조작했다.
미터기 조작은 폐차를 앞둔 영업용 택시를 생생한 중고차로 되돌리기도 한다. 두 달 전 2001년식 소나타를 550만원에 산 박철호(30)씨도 곧 경찰서를 찾을 예정이다. 차량 와이퍼모터를 교체하러 정비소에 들렀다 차의 과거를 알게 된 것. 박씨는 "차량 미터기에는 분명히 7만5천km로 찍혀 있는데 전산조회을 해 보니 벌써 2006년에 39만km를 넘게 달린 영업용 택시였다"며 땅을 쳤다.
◆어떻게 조작하나
중고차 주행거리 조작은 '메다방'을 통해 은밀하게 이뤄지는 게 보통이다. 메다방은 불법으로 자동차 미터기를 조작해 주행거리를 단축시켜 주는 곳을 일컫는 말이다. 조작이 어려운 디지털 미터기가 주를 이루면서 '메다방'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1일 오후 2시 대구 한 중고차 매매상. 짙은 선팅을 한 봉고차량 한 대가 들어온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내린다. 손에는 노란색 수건 두 장이 들려 있다. 사무실 캐비닛에 숨겨져 있는 차량 미터기를 잽싸게 수건으로 만다. 다시 봉고차 안으로 들어간다. 15분 뒤 두툼한 수건 뭉치를 들고 나오더니 현금 7만원을 받는다. 이곳 업주는 "아날로그 미터기는 손쉽게 핀셋 등으로 조작할 수 있지만 디지털 미터기는 전문 메다방에 맡겨야 한다"며 "중고차를 구입하는 일반 운전자들도 주행거리를 단축해 달라는 요구를 곧잘 한다"고 말했다.
주행거리 조작 수법은 크게 두 가지. 계기판에 장착된 주행기록 저장칩을 새 칩으로 바꿔 끼거나, 칩 자체 기록을 변경하는 방식이다. 칩 교체 방식은 미터기를 차체에서 떼낸 뒤 기록 저장칩을 빼고 원하는 주행거리가 저장된 칩을 꽂는다. 또 하나는 기존의 칩은 그대로 두고 컴퓨터에 조작 프로그램을 설치한 뒤 미터기에 연결해 원하는 거리를 입력하는 방식이다.
계기판을 통째로 바꿔 끼우는 방법도 종종 쓴다. 차량 검사를 받지 않은 차는 주행거리 기록이 남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한다. 승용차는 출고 후 4년째 되는 해에 정기검사 받도록 돼 있다. 한 중고차 딜러는 "2천만원 기준 대형 중고 차량의 경우 주행거리를 10만km 낮추면 300만원가량 더 받을 수 있다"며 "대구에도 20여군데 메다방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어떻게 구별하나
'적다 싶으면 의심부터…'
전문가들은 차량 연식에 비해 주행거리가 현저하게 낮을 경우 일단 미터기 조작부터 의심해 봐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경찰은 "정기점검을 받았을 때 차량등록증에 기록된 주행거리와 차량 연식에 따른 추정 주행거리를 비교하면 조작 여부를 대략이나마 가려낼 수 있다"며 "연 2만㎞ 정도를 주행한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요즘은 차량 전산 기록망까지 뒤져봐야 안심할 수 있다. 차량 등록증을 세탁하는 신종 수법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중고 자동차 딜러 이상민씨는 "시·도를 넘나드는 중고차량의 경우 차량등록증은 신규로 발급받는 게 보통이어서 등록증 세탁이 가능하다"며 "전산에는 차량 과거가 남지만 차량등록증에는 가장 나중 검사일 주행거리만 기록돼 차량등록증도 완전히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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