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공짜표의 파괴력

뮤지컬이나 오페라 등 대형 공연작품의 티켓 한 장 값은 대략 10만원(R석 기준) 정도다. 관객들은 대체로 이 값을 '비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제작자들은 '티켓 값을 더 올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작품 한 편을 만드는 데 드는 수고와 정성은 차치하고라도, 제작비용과 공연비용 등을 고려할 때 현재의 입장료로는 '적자공연'을 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좌석이 꽉 찬다고 가정해도 그렇다.

이런 까닭에 공연제작자들은 지자체의 지원이나 협찬, 찬조 등에 혈안이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해 출연 배우들에게 출연료 대신 공연티켓을 주는 경우도 있다. 이런 피해를 당하는 배우는 물론 스타 배우가 아니라, 배고픈 배우들이다. 작품 한 편을 만들기 위해 몇 달간 고생한 대가로 돌아오는 것이 티켓인 셈이다. 배우들은 이렇게 받은 티켓을 헐값에 팔거나 지인들에게 공짜로 나눠줘야 한다.

상황이 이러니 제작자들이 창작에 정성을 쏟기 힘들다. 대구시가 20년 이상 문예진흥기금을 배정했고, 10년 넘게 무대공연작품을 지원했지만 이렇다 할 작품이 나오지 않은 것 역시 그 정도 지원으로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제작자들이 죽을 각오로 작품을 만든다면 좋은 작품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작자들은 '죽을 각오를 하면 죽을 뿐임'을 안다. '돈에 작품을 맞춰야지, 완성도에 돈을 맞추려다가는 망한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다.

완성도 높은 공연작품을 만들어 관객은 만족하고, 제작자는 망하지 않을 방법은 없을까.

지자체의 지원을 몇 배쯤 늘리면 간단하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 않다. 예산은 한정돼 있고 지원해달라는 집단은 많기 때문이다.

당장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은 공짜표, 즉 초대권을 없애는 것이다. 관객 1천명이 입장할 수 있는 극장에 적게는 100명에서 200명, 많게는 300명 이상이 공짜표로 입장하는 게 현실이다. 누구는 공짜표로 구경했다더라 하니 너도나도 공짜표를 기대한다. 제값 치르고 공연 관람하는 것을 억울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럼 제 돈 들여 제작하는 사람들은?)

사회 지도층일수록 초대권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낸데, 내가 관람해주는 것만도 영광인데 (주최측이) 초대권 보내는 건 당연하지'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초대권 자리는 객석 중 가장 좋은 자리이다. 초대권을 받아놓고도 '온다, 간다' 말없이 오지 않는 경우도 많다. 자리까지 비는 것이다. '못 간다'고 말하기 미안해서 그럴 것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갈 수 없다면, 갈 수 없다고 말하는 게 옳다.

공짜표 문화에 익숙하다 보니 정작 보고 싶은 공연이 와도 은근히 공짜표를 기다리는 관객도 더러 있다. 그렇게 기다리다가 보고 싶은 공연을 놓치기도 한다. 아예 공짜표를 기대하지 않았다면, 보고 싶은 공연을 망설이지 않고 보았을 것이다. '문화적 욕구 충족' 기회를 '값싼 공짜표' 때문에 놓치는 셈이다.

좋은 공연을 관람한 관객은 다음 공연을 기다리기 마련이다. '돈이 아깝다'며 떠난 관객을 다시 공연장으로 불러들이기는 어렵다. 공짜표가 나돈다는 것은 그만큼 제작예산이 줄어듦을 의미한다. 결국 공짜표는 작품의 완성도를 떨어뜨리고, 그 결과 제값 치르고 입장한 관객들은 실망한다. 실망한 관객을 다시 부르기는 어렵다.

조두진 문화체육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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