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700자 읽기]내가 사랑하는 시

최영미 지음/해냄출판사 펴냄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시인 최영미는 검정 교복의 여학생일 때 마음에 와닿는 시 구절들과 '세계의 명시'들을 공책에 한 줄 한 줄 정성껏 베꼈었다. 치열한 청춘을 통과한 그 여학생은 시인이 되었고 자신의 작품을 풍요롭게 만든 55편의 시들을 모아 이 책을 펴냈다.

'내가 죽거든 싸늘하고 음산한 종소리를 듣고/종소리보다 오래 애도하지 마세요/'''/이 시구를 읽어도 시를 쓴 손을 기억하지 마세요/당신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나는 차라리 그대의 향기로운 머리에서 잊혀지길 바라니까요/'''/당신의 사랑도 나의 목숨과 함께 썩어 없어지게 놔두세요/영악한 세상이 그대의 슬픔을 꿰뚫어보고,/내가 사라진 뒤에 그대와 나를 조롱하지 않도록/(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71:내가 죽거든'). 이 시에 대해 최영미 시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를 사로잡는 기지가 넘치는 시"라며 "비열한 세상을 풍자하고 있지만 정말 삶에 지친 사람의 머리에서는 이처럼 흥미진진하며 재기발랄한 언어가 나오지 않는다"고 평했다.

예이츠의 '그대가 늙었을 때'에 대해 "사랑이라는 낡은 단어도 주인을 잘 만나면 새로워질 수 있다"고 했고 신동엽의 '그 사람에게'에 대해서는 "이보다 간단명료하게 쓸쓸한 우리 시를 나는 못본 듯하다"고 감탄했다. 152쪽, 1만2천800원.

김지석기자 jise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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