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가지 통계와 미사여구로 무장했지만 전통 경제학은 인간의 마음을 볼 수 없다. 그래서 오류투성이다.' 이 책 '경제학이 숨겨온 6가지 거짓말'을 간단히 정의한다면 그렇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길을 가르쳐 줄 때 오래전에 문 닫은 술집을 기준으로 설명한다. 이미 문을 닫은 지 오래된 술집이 마치 지금도 성업 중인 것처럼 '어느 집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라'고 가르쳐 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설명을 듣고 잘 찾아간다. 한때 방향의 지표였으나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집이 일종의 '정신적 지표'로 작용하는 셈이다.
더블린의 택시 기사들은 레너드의 술집이 있었던 '레너드 모퉁이로 갑시다' 라고 하면 바로 알아듣는다. 택시 기사들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레너드 모퉁이'라면 어디를 지칭하는 지 금세 안다.
그러나 최근 더블린 시의회는 더 효율적인 체계를 만들기 위해 더블린의 주요 교차로에 알파벳 숫자를 붙이고 그에 맞는 새로운 표지판을 세웠다. 기대대로라면 더블린 시민뿐만 아니라 관광객들도 체계화된 도로 시스템 덕분에 길 찾기가 쉬워져야 한다. 그러나 더블린 시민들은 여전히 '레너드 모퉁이 갑시다'라고 외친다. 택시 기사에게 'J14 로 갑시다'라고 말하지만 알아듣지 못한다.
이 이야기는 한 사회의 공통된 인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기본적인 인간 사고체계가 경제학이 내세우듯 효율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다는 점을 방증한다. 사람은 의외로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지금까지 경제학은 '인간은 합리적이다'는 전제 아래 이론을 세워왔다"고 말한다. 예컨대 백화점에 옷을 사러 간 사람은 자신의 예산 범위 내에서 행복을 최대화 해줄 수 있는 상품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고 합리적이다. 그러나 막상 쇼핑을 시작하면 '합리성'에서 벗어나기 일쑤다. 이른바 '지름신'이 강림하면 속수무책이 돼 버린다. 합리적인 인간이 어째서 나중에 땅을 치며 후회할 짓을 하는 것일까. 자신이 감당하기도 어려운 일을 저지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경제학은 '지름신'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 책은 '인간은 이기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는 행동 경제학적 논리를 내세운다. 특히 기존의 경제학이 주장해온 6가지 전제 '인간은 무조건 이익을 추구한다. 세상은 예측 가능하다. 인간은 이기적이다. 아무리 광고해도 소용없다. 조직은 합리적이다. 기업은 이윤 극대화를 목표로 한다'는 틀렸다고 비판한다.
기존 경제학의 6가지 전제로는 '광고에 거짓말이 많은 줄 알면서도 구입하는 행위, 비싼 찻값에도 불구하고 공정무역 카페를 찾는 행위'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전통 경제학은 인간이 저지르는 실수나 변덕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전통 경제학이 말해온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공간을 마케토피아로, 그곳에 사는 사람을 마케토피아인으로 설명한다. 반대로 행동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이기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으며 불확실한 현실 세계를 머들톤, 그곳에 사는 사람을 머들톤인이라고 칭한다.
마케토피아인에게 '행복'은 자신이 선호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어느 정도 살 수 있는지, 그것을 사는 데 얼마나 비용이 필요한지가 관심사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에만 관심이 있고 주변 사람들의 삶은 중요하지 않다. 마케토피아인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물질이다. 지은이는 바로 이점이 인간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지은이 피트 런은 신경과학을 전공한 신경경제학자다. 그는 경제학과 학생들이 방정식과 도표만 잔뜩 들어있는 경제학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의 마음속'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신경경제학'이라는 것이다.
이 책이 말하는 '신경경제학'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분야이지만, '주경제학'이라기보다 '보완 경제학' 정도가 돼야 할 듯하다. 아직 완전히 통계화하지 못했을 뿐 현대 경제학 역시 궁극적으로 인간의 심리를 연구 대상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328쪽, 1만4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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