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국회의원 부인의 튀는 행보가 시중의 화제다. 이 부인이 지역구 행사장에 나타나면 남성들이 앞다퉈 '사모님' '사모님' 하며 굽신거리는 광경을 연출한다고 한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출마 예정자들이 부인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해서다. 심지어 구청장을 노리는 한 구의원은 주말이면 부인을 승용차에 태워 행사장을 오가고, 시'구의회 출마 예정자들은 밥 대접을 하고 싶어 줄을 선다고 한다. 그 부인에게 밉보인 구청장은 공천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소문이 벌써부터 파다하다. 해당 지역에서는 '공천을 받으려면 부인의 핸드백을 들고 다니는 데 신경을 써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1950, 60년대에 있던 과거사가 아니라 지금 대구에서 버젓하게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자유당 시대에 '국회의원 부인이 군수를 불러 호통을 쳤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요즘 이런 일이 있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단순하게 그 부인의 뒤틀린 내조나 치맛바람으로 볼 수 있는 차원이 아니다. 시'구의원을 국회의원 혹은 그 부인의 '심부름꾼' 정도로 여기는 것은 풀뿌리 민주주의 근간을 뒤흔드는 범죄행위다. 그 소문이 맞다면 부인은 물론이고 해당 국회의원까지 정치판에서 퇴출시켜야 할 심각한 문제다.
그보다 더 놀라운 일은 그 난장판을 보고 뒤에서 쑥덕대고 있을 뿐, 누구 하나 공개적으로 비판의 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회의원부터 시'구의원, 출마 예정자까지 한나라당 일색이기 때문이다. 모두 공천에 목숨을 걸고 있는 판에 누가 누구에게 비판의 화살을 쏠 수 있겠느냐고 하지만, 해도 해도 너무하다.
비단 대구 한 곳뿐이라면 그런대로 위안을 받을 수 있으련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한나라당 공천=당선' 공식이 성립되는 대구'경북에서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경북 모 지역에서도 '사모님'이 내려오면 온통 난리가 난다. 도'군의원, 단체장 출마 예정자들이 대거 찾아와 부인을 보기 위해 줄을 선다고 한다. 운전사로서 모실 수 있으면 '큰 영광'이고 눈도장이라도 제대로 찍으면 '감격'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내년 6월 지방선거가 걱정스럽다. 출마 예정자들이 국회의원 부인에게도 지극 정성을 보이는데 공천권을 쥔 국회의원과는 어떤 '뒷거래'를 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예전부터 대구의 일부 구청장, 시의원 경우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들이 공천을 받곤 했다. 이 인물들의 특징은 재력이 있고 지구당에서 당직을 맡아 국회의원 선거를 도와줬다는 점이다. 뒷얘기를 들어보면 한결같이 국회의원이 대구에 내려올 때 '술' '밥' '골프' 접대를 도맡았거나 '자금줄'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분들이었다. 국회의원들이 하도 신세를 많이 지다 보니 공천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 분들은 대개 4년 단임으로 끝났고 행정 능력도 수준 이하인 경우가 많았다. 국회의원의 부도덕성이 지역민들에게 알게 모르게 큰 피해를 입힌 사례다. 지방의원'단체장을 국회의원 '하수인'으로 만든다면 과연 지방자치제가 존속할 이유가 있는지 의문까지 든다. 2006년부터 기초의원'단체장까지 정당 공천을 받도록 만든 이들의 속셈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짐작이 된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대구의 한 구의원은 4년 전 출마를 결심했으나 지역구 국회의원과 일면식이 없었고, 돈은 물론이고 학벌도 시원찮았다. 주민들에게 봉사할 수 있는 방안을 꼼꼼하게 만들어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공천신청을 했다 예상 밖으로 두차례의 면접 심사 끝에 공천을 받았다. 이 구의원은 깐깐한 인상을 가진 그 국회의원의 담백함에 놀랐다고 한다.
현실적으로 대구'경북에서 내년 지방선거의 성패는 공천권을 쥔 한나라당 의원들의 손에 달려있다. 자신에게 충성하는 이들만 공천한다면 결국 자신도 유권자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주민에게 봉사하는 일꾼을 공천해야 지역을 살리는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다시는 '국회의원 부인의 핸드백' 얘기를 듣지 않길 바란다.
朴炳宣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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