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며칠 전에 넘어졌거든. 팔목이 자꾸 부어서 왔는데…."
"할머니, 우리 병원에는 지금 정형외과 의사가 없거든요. 원하신다면 엑스레이를 찍어보실 수는 있지만 인근 정형외과로 가셔서 진료를 받는 편이 나을 겁니다."
5일 오전 11시, 적십자병원 입구 원무과에서는 환자 접수는커녕 인근 병원으로 환자들을 돌려보내기에 바빴다. 대구 적십자병원의 폐원 여부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병원은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였다.
대한적십자사가 지난 8월 발표한 '경영정상화방안 컨설팅' 에서 대구 적십자병원은 폐원(본지 8월 11일자 6면 보도)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오자 병원은 사실상 폐원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정형외과, 일반외과, 신경과, 정신과 등 8개과에 달했던 진료과목은 모조리 문을 닫고 내과와 가정의학과 등 2개과밖에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다. 12명에 달했던 의사도 올해 초 모두 병원을 떠나고 2명의 의사가 진료를 해온지가 벌써 6개월이 넘었다. 병원 관계자는 "가정의학과는 건강검진 등을 주로 담당하고 있고, 사실상 내과 의원으로 전락한 실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물리치료사와 방사선 영상촬영사 등도 남아있지만 외과 진료를 할 수 없다보니 반쪽짜리 운영을 하고 있다. 한때 하루 진료 인원 100여명을 넘어섰던 물리치료실은 요즘 하루 20여명을 진료하기도 힘든 실정이고, 방사선실 역시 촬영을 해도 이를 판독해 줄 의사가 없어 인근 병원에 의존하고 있다.
입원실 3층과 6층은 폐쇄된 상태였다. 병원 측은 "병상수가 120여개에 달하지만 진료과목 축소로 입원환자가 줄면서 현재는 20명 정도만이 입원실을 사용하고 있다"며 "이마저도 환자가 점점 줄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적십자병원 노동조합 관계자는 "여론에 떠밀려 폐원 방침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사실상 병원을 고사시키겠다는 전략 아니겠냐"며 "이대로라면 환자가 줄어들어 자동 폐원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적십자병원이 사실상 기능정지 상태가 되면서 저소득층 환자들은 갈 곳이 없어졌다. 대구지역에선 저소득층 노인들이나 이주노동자, 쪽방거주자 등 소외계층이 찾을 수 있는 공공의료시설은 대구 적십자병원과 대구의료원 2곳뿐인 것. 특히 대구 적십자병원은 전체 진료인원 중 의료급여 수급자가 30%이상(금액으로는 55%이상)을 차지하며 도심 구호병원의 역할을 맡아오고 있다.
이 병원 관계자는 "이곳이 아니면 치료받을 데가 없다고 말하는 이주노동자들을 돌려보내야 할 때는 정말 '적십자'라는 이름마저 부끄럽다"며 한숨만 내쉬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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