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수성구의 한 기원. 330㎡ 공간, 100석 자리가 텅 비어 있다. 백발이 성성한 몇몇 할아버지뿐이다. 2시간쯤 기다렸지만 출입문을 넘는 사람이 없다. "하루 많이 와야 20명 정도야. 예전엔 100명은 기본이었는데…."
1980, 90년대 동네 사랑방 역할을 했던 기원이 사라지고 있다. 바둑TV, 바둑교실 등 바둑을 배우고 즐길 수 있는 통로가 다양해진 데다 1990년대 중반부터 인터넷 바둑이 대중화됐기 때문이다.
현재 대구 기원 수는 70여곳 정도로 추정된다. 10년 전 300여곳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기원은 1990년대 초반까지 조훈현, 이창호 등 스타 프로기사의 영향으로 최대 호황을 누렸다. 기원마다 문 열기 1시간 전부터 바둑을 두려는 사람들이 진을 쳤다. 때문에 으레 기원 아래에는 다방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1969년인가…. 매일신문사에서 대구 최초로 고(故) 조남철 9단과 김인 9단의 해설 대국을 개최했어. 당시 입장료가 500원이었는데 표가 없어서 못 들어갈 정도였지. 그 당시 기료가 15원이었으니까 인기가 대단했지. 그때 그 시절엔 대구 기원마다 바둑 인파로 북적였어."
잘나가던 기원은 이제 추억 속 풍경으로 남아 있다. 대부분의 기원이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다. 초등학생 대상의 바둑교실이 성행하면서 오래된 기원은 막다른 골목에 놓이게 됐다. 10년 전 5천원이던 기료가 오히려 4천원으로 내렸을 정도로 손님이 없다.
"예전 큰 기원 한달 매출은 600만원 이상이었어. 하지만 요즘 기원들은 가게 임대료와 전기요금 내기도 빠듯할 만큼 사정이 좋지 않아. 연금을 타 먹는 사람이 취미로 하면 모를까." 양현모(64) 사범은 "기원이 아니더라도 바둑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레 손님이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진정한 바둑의 맛을 아는 사람들은 여전히 기원으로 향한다. 이들에게 기원은 추억 그 이상이다. 박만용씨는 "바둑판에 마주앉아 눈빛 하나까지도 읽으면서 바둑을 두는 게 살아 있는 바둑"이라고 말했다.
흔히 바둑을 수담(手談)이라고 한다. 손으로 나누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그만큼 사람과 사람이 마주 앉아 바둑을 두는 것은 단순한 경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바둑을 두는 과정에서 나오는 다양한 전략과 전술은 곧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다. 위기를 만났을 때 취해야 할 자세 또한 인생과 다를 바 없다. 이런 이유에서 바둑을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하는지 모른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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