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군 가창면 우록 산기슭에 자리잡은 '이서정'(伊西亭). 작가 박중식(61)의 화실이다. 세상을 갉아먹는 온갖 거짓과 음해가 싫어져 수년 전 갑자기 교편을 놓고 칩거하듯 들어간 그 곳. 작가는 몇몇 지인들과의 교분 외에는 책과 그림만을 벗 삼아 지내왔다. 하지만 가창성당을 그림으로 채우고, 이를 위해 합쳐서 8천호가 넘는 그림을 그리며 작가는 다시 한번 세상을 향해 손을 내밀기로 결심했다.
이서정 곳곳에 남아있는 작가의 삶의 궤적들. 처음 붓을 잡은 뒤 50년 세월. '보여주고픈 그림'과 '그리고픈 그림' 사이에서 작가는 끊임없이 갈등했고, 그 흔적은 그림 속에 마치 굳은 살과 생채기처럼 남아있다. 몇 해 전 작업했다는 우리 겨울산의 설경(雪景)들. 그림을 대하고 있노라면 마치 그 거대한 풍경이 성큼 내달아 캔버스 밖으로 튀어나올 듯 기가 느껴진다. 거대한 산 아래 놓은 작은 조약돌 하나 놓치지 않는 작가의 치밀함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사람 하나 없는 설경 속에 따스한 정감이 느껴지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하지만 작가는 만족할 수 없었다. 무언가 더 있을 것 같았다. 하나의 주제와 기교에 천착할 법도 하지만 그는 미지의 세계를 찾는 항해사처럼 새로움을 추구했다. 이번 17번째 개인전을 아우르는 주제는 '추억제'(追憶祭). 작가 박중식은 "이제서야 그리고픈 그림에 이르렀다"며 "아직 가야할 길이 멀지만 마치 새로운 것을 찾아낸 뒤 기뻐 어쩔 줄 모르는 아이 같은 마음"이라고 했다.
특유의 세밀함과 정교함 대신 작가는 '색'(色)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그림 속에 바람을 불어넣었고, 그 바람은 시간을 되돌려 우리를 어린 시절로 데려다 놓았다. 그림 뒤편 커다란 나무는 바람에 휘어질 듯 가지가 꺾였지만 앞으로 나올수록 평온함을 찾는다. 아이를 업고 선 누이의 표정에는 깊은 상념이 드리워있지만 그늘지지 않았다. 해바라기와 맨드라미가 흐드러지게 피어있기도 하고, 눈꽃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하기도 했다. 수 십 년 작업에도 변하지 않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그림을 꿰뚫는 '정'(情)이다.
온갖 추억이 쌓여있는 고향의 그리움을 담은 박중식의 신작 25점을 만날 수 있는 '추억제'는 예송갤러리 초대전으로 7~21일 열린다. 작가는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대구시미술대전 최고상을 수상했으며, 구상그룹인 표상회 창립 멤버이다. 일본 도쿄, 나고야, 오사카 등지에서 5차례 초대전과 오스트리아 비엔나, 크렘스뮌스터에서 개인전을 갖기도 했다. 053)426-1515.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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