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쌀 대접 이유

"미국 헌법의 첫 문장은 'We the People'로 시작되는바 이때의 'people'은 농민을 의미한다."(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 역사학자 존 쉴레베커의 말) "미국 제16대 대통령 링컨은 취임 다음해(1862년) 농무부 창설 법에 서명, 농무부를 발족시키고 '국민의 부처'(People's Department)라고 이름 지었다. 농무부 건물 현관엔 링컨의 흉상이 놓여있다. 국방부 다음의 큰 조직으로 약 11만 명의 농무부 직원들은 출퇴근하면서 링컨의 교훈을 가슴에 새기는 것 같다."(미국 농업정책과 한국농업의 미래, 김재수 농촌진흥청장 지음)

미국은 세계가 공인하는 농업 강대국. 농산물로 세계를 주무르고 있다. 농업이 국가 기본이라는 농업 중시 정책인 농업 기본주의(farm fundamentalism)는 여전하다. 농산물 국제경쟁력은 세계 최고다. 자국 농민 이익을 위해서 정부, 이익단체(압력단체), 의회가 한몸이다. 그렇게 해서 농산물 시장 자유화로 가는 과정으로 1986년 우루과이라운드(UR)가 탄생하고,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출범했다.

우리의 쌀 시장 개방의 한시적 유예와 쇠고기 시장 개방도 미국 같은 농산물 수출국의 힘의 논리에 따른 이런 흐름의 결과물이다. 눈물겹게 이뤄낸 보릿고개 탈출과 쌀 자급자족이 지금은 되레 천덕꾸러기 신세다. 육류 섭취 증가, 갈수록 서구화하는 입맛. 쌀소비는 매년 줄고 재고는 늘고, 쌀 수매가를 둘러싼 정부 농민들 간 해묵은 갈등, 쌀 외면과 천대로 농민들의 영농 의욕은 땅에 떨어졌다. 정부 농민 모두 벼 수확철이 괴롭기만 하다.

쌀은 우리 주식이다. 특히 우리가 좋아하는 차진 쌀(자포니카쌀)은 국제적으로도 거래량이 매우 적다. 기후 영향에 민감해 생산이 매우 불안정하다. 가격 변동도 예측할 수 없다. 날씨 변화로 흉작 시 식량 파동은 불 보듯 하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 쌀. 속된 말로 '밥 대신 라면으로 때우면 된다'며 웃어넘길 수도 없다. 쌀은 곧 무기이고 쌀은 생존 문제다. 얼마 전 동남아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식량 파동으로 인한 약탈의 현장을 목격하지 않았는가. 식량안보(食糧安保)란 그저 생긴 말이 아니다. 쌀을 푸대접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쌀 같은 주곡 농산물은 현 정부가 좋아하는 '경제 논리'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11일은 농업인의 날. 11은 10(十) 더하기 1(一). 합치면 흙 토(土). 흙 토가 겹치는 날이라 땅과 더불어 살아가는 농민들을 위한 날로 정했다. 올해도 대풍이다. 수심 가득한 농민 얼굴에 따사로운 햇살은 언제쯤….

정인열 중부지역본부장 oxe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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