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옛 시조 들여다보기] 추산이 추풍을 띄고

추산이 추풍을 띄고

유천군(儒川君)

추산이 추풍을 띄고 추강에 잠겨 있다

추천에 추월이 두렷이 돋았는데

추상(秋霜)에 일쌍추안(一雙秋雁)은 향남비(向南飛)를 하더라.

"가을 산이 가을 색을 띠고 가을 강에 잠겨있다./ 가을 하늘에 가을 달이 뚜렷이 돋았는데/ 가을 서리에 한 쌍의 가을 기러기는 남쪽을 향해 나르더라" 로 풀리는 시조다.

작자가 유천군으로 나타난다. 단지 효종조(1619~1659)의 사람이라는 것 외에는 밝혀진 것이 없는데 시조는 두 편이 전한다. 인용한 작품과, "어제도 난취하고 오늘도 또 술이로다. / 그제 깨었던지 긋그제는 나 몰라라/ 내일은 서호에 벗 오마니 깰동말동 하여라" 는 작품이다. '어제도 난취하고' 라는 작품은 『병와가곡집』을 비롯하여 19군데의 가집에 전하지만, '추산이 추풍을 띄고' 는 오로지 『병와가곡집』에만 전한다.

이 작품은 글자 수로 따져 마흔 석 자로 이루어졌는데 그 중 '추'(가을)자가 일곱 번이나 들어있고 각 장의 첫 글자가 '추'자로 시작된다. 가을 노래로 작품 속이 온통 가을이다. 가을이 깊어가는 것을 오로지 '가을'이라는 말로 반복하여 계절감을 담아내고 있다. '추(秋)'자를 '가을'로 풀어 읽으면 온통 가을이 되어 가을이라는 것을 더욱 실감나게 한다. 언어 유희적 성격이 강하지만, 눈이 보이는 자연 현상에 '가을'을 접두사로 앉혀 가을을 더욱 가을이게 하는 것이다.

초장의 '추풍(秋風)'을 '가을 바람'으로 해석하기보다는 가을 빛깔로 해석해야 그 다음 구에 자연스럽게 연결될 것 같다. 가을 강에 단풍 든 가을 산이 잠겨있는 것을 보는 감회는 물든 가을 산을 바로 보는 것과 분명 다를 것이다. 중장은 그 어느 계절보다 하늘이 더 높아 보이는 가을밤에 가을 달이 둥그렇게 떠있다. 그렇잖아도 감상에 젖기 쉬운 가을인데 높은 하늘에 둥근 달이 떠 있으니 오죽하겠는가.

초장은 가을의 낮이고 중장과 종장은 가을의 밤이다. 달은 밝아도 서리가 내리는 밤에 기러기 한 쌍이 남쪽을 향해 나르더라고 무심한 척 했다. 그러나 가을 기러기가 남쪽을 향해 나른다고 하는 것은 억지가 아니라도 가을 다음의 계절, 겨울을 준비하라는 메시지가 담긴 것으로 읽어야 될 것 같다. 기러기는 떼 지어 나는 것이 보통인데 굳이 '한 쌍' 이라고 노래한 것은 화자의 가을 심상을 드러낸 것이리라.

문무학 시조시인·경일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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