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서 승부차기만큼 짜릿한 것이 없다. 끝장을 보기 위한 과정인 만큼 선수나 관중, 모두 손에 땀을 쥐기 마련이다. 키커가 바들바들 떨거나 실축이라도 하면 죽을 듯한 표정을 짓는 장면이 TV에도 생생하게 잡힐 정도다. 그런 잔인한 상황 때문에 '11m의 러시안 룰렛'으로 불린다.
지난 6일 한국청소년 대표팀(17세 이하)이 멕시코와의 승부차기에서 5대 3으로 승리해 8강에 올랐다. 어린 선수들이 골대 구석으로 쑥쑥 차넣는 것을 보고는 한국 사람의 배짱에 놀랐다는 얘기가 많았다. 한국 선수들은 대범한 표정이었지만 멕시코 선수들은 잔뜩 겁을 집어먹은 표정이었으니 결과는 뻔했다.
축구선수의 경우 승부차기의 성공률이 100%에 가까워야 정상이다. 과학적으론 키커가 차는 시속 120~130㎞의 공을 골키퍼가 보고 막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프로선수의 경우에도 70%대의 성공률에 그치는데 그 이유는 심리적 문제에 기인한다. 키커는 '반드시 넣어야 하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골키퍼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유명 선수보다는 겁없는 어린 선수의 성공률이 훨씬 높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승부차기 대결이 있었다. 축구 역사상 가장 예리한 창인 축구 황제 펠레와 가장 튼튼한 방패인 전설적인 수문장 야신의 대결이었다. 1967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브라질 축구협회 창립 50주년을 기념한 산토스팀과 소련 디나모 모스크바팀의 친선경기에서 관중을 위한 이벤트로 벌어졌다. 펠레는 골키퍼 앞에서 페인트 동작을 한 후 가볍게 골대 구석으로 찔러넣는 킥을 했는데 어릴 때부터 실축한 적이 거의 없었고, 야신은 페널티킥 허용률이 45%로 다른 골키퍼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펠레가 모두 10개를 찼는데 첫 번째 슛은 야신의 선방으로 실패했지만 나머지는 모두 침착하게 성공시켰다. 탁월한 테크닉이 확률마저 무색하게 한 사례다.
세상살이도 승부차기와 무척 비슷한 것 같다. 테크닉과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골을 성공시킬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요즘 한국 정치를 보면 이명박 대통령이 4대강 사업, 세종시 문제를 들고 키커로 나선 듯한 형국이다. 과연 키커의 능력이 어느 정도일지, 그 승부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사뭇 궁금해진다.
박병선 논설위원 l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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