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 속의 인물]나약한 정치인 네빌 체임벌린

"이역만리에서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간에 벌어진 분쟁 때문에 우리가 참호를 파고 방독면을 뒤집어써야 한다면 이 얼마나 끔찍하고 황당하며 믿을 수 없는 일이겠습니까. 게다가 이미 합의가 이뤄진 분쟁 때문에 전쟁을 벌이는 것은 더욱 말도 안 되는 일일 것입니다."

실패한 유화책의 대명사로 불리는 1939년 9월 29일의 뮌헨회담을 이틀 앞두고 영국 총리 네빌 체임벌린이 한 말이다. 체코슬로바키아 영토인 주데텐란트를 넘겨주지 않으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히틀러의 협박을 수용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회담 후 영국으로 돌아온 체임벌린은 히틀러가 서명한 협정문을 흔들어보이며 "이 시대의 평화를 보장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6개월도 안돼 독일군은 체코슬로바키아의 나머지 지방을 병합하고 이어 폴란드를 침공했다. 2차대전의 시작이었다. 체임벌린은 곧바로 사임한 뒤 얼마 안돼 화병으로 사망했다. 1940년 오늘이다.

그는 히틀러의 의도를 전혀 모르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에 맞설 배짱도 없었다. 순진하게도 양보하면 전쟁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기품있는 영국신사였지만 영국산 불독의 기백과 사나움은 갖추지 못한, 유약한 정치인이었다.

정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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