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간판기업 속속 입주, 9년전 삼성 경제효과 능가"

옛 삼성상용차 부지에 첨단업체 잇따라

꼭 9년 전인 2000년 11월 3일, 정부는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29개의 부실기업 퇴출 명단을 공식 발표했다. 이날 발표한 기업에는 대구시의 미래를 책임질 것으로 믿었던 삼성상용차가 포함돼 있었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12월 12일. 대구지법 제30민사부(당시 재판장은 김진기 전 수석부장판사)는 대구 달서구 호산동(당시는 파산동) 성서3차 산업단지에 본사·공장을 두고 있던 삼성상용차에 대해 '파산'을 선고했다. 이 회사의 자산은 6천438억원이지만 부채가 6천556억원으로 자산보다 118억원 많고 공장 설립 이후 누적적자가 4천502억원에 달한다는 이유였다. 움츠러드는 '섬유'가 아니라 뻗어나가는 산업인 '자동차'를 통해 대구가 옛 영화를 되찾겠다던 지역민들의 희망이 물거품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9년이 흐른 지금. 그 절망의 땅에서 다시 희망이 움트고 있다. 삼성은 갔지만 새로운 기업들이 대구의 희망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그 후 9년…

2009년 11월 3일, 대구 성서3차 첨단산업단지에서 STX엔파코㈜ 대구공장 준공식이 열렸다. 9년 전 대구시민들에게 큰 실망을 안긴 옛 삼성상용차 터에 들어선 이 공장에서는 선박엔진 등 첨단 엔진부품을 생산할 예정. STX는 이 공장 건립에 1천억원 이상을 투자했으며, 앞으로도 R&D동 및 제3공장 추가 건립에 1천억원 이상을 더 투자할 계획이다.

2001년 출범한 신생 기업인 STX그룹은 조선·기계, 해운·무역, 중공업·건설, 에너지 4대 사업 부문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 불과 9년 만에 자산총액 32조원(해외법인 포함)에 재계 12위(공기업 제외)의 대기업으로 성장한 요즘 가장 잘나가는 기업이다. 대구경북 출신인 강덕수 회장은 맨손으로 그룹 회장이 된 입지전적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준공식에서 김범일 대구시장은 "STX가 대구 경제의 구심점이 되는 선도 기업으로 성장했으면 한다"며 9년 전 삼성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우회적으로 소망했다.

STX엔파코 대구공장은 옛 삼성상용차 터에 입주한 14번째 기업이다. 이곳에 들어오기로 계획된 15개 업체 가운데 한곳을 제외하곤 모두 공장 문을 연 것이다. 나머지 한곳인 모바일부품 생산업체 ㈜GMS도 2011년 완공을 목표로 지난해부터 공장을 짓고 있다.

◆어떤 기업들이?

옛 삼성상용차 부지(64만2천㎡·19만4천평)에 들어선 15개 업체는 모두 대구를 대표하는 '간판 기업'들이다. 일단 대구 스타기업인 한국OSG와 KTV글로벌, 퓨전소프트가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초경합금공구를 생산하는 한국OSG는 그동안 수입에 의존했던 절삭공구를 국산화하고 세계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아 역수출하고 있는 대구 대표 중소기업이다. LCD/PDP TV를 생산하고 있는 KTV글로벌과 주력 생산품이 PMP와 내비게이션인 퓨전소프트는 예상 매출액이 각각 5천억원, 1천503억원에 이르는 전도 유망한 기업이다.

지역에서는 몇 안 되는 연간 매출 1조원대를 돌파한 희성전자와 국내 태양광 업계 최초로 내년 1분기에 미국 나스닥(NASDAQ) 상장이 확실시되는 미리넷솔라도 주목받는 기업 중 하나다. 이 외에도 제이브이엠, 디보스, 화신, 참테크, 성진포머, 새로닉스, 한국파워트레인, 대영코어텍, GMS 등 지역의 첨단산업을 이끌 업체들이 모여 있다.

대구시 관계자는 "삼성상용차 퇴출 이후 이 부지를 어떤 업체들로 채울까 고심한 끝에 첨단 산업단지라는 결론을 내렸다"며 "이후 2차례 분양 끝에 재계 12위인 STX를 비롯해 LCD/PDP 모니터, 모바일, 태양전지·모듈, 공작 기계부품, 자동차부품 등의 첨단 업체들로 모두 채우게 됐다"고 말했다.

◆삼성이 갔어도…

대구시 한 관계자는 "옛 삼성상용차 터에 입주한 기업들의 내실을 조목조목 따져보면 9년 전 삼성의 경제 효과를 훨씬 능가한다"며 "삼성은 갔어도 이들 업체들이 새로운 희망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인근 성서 주민들은 9년 전 삼성상용차가 떠난 자리에 하나둘씩 가동하는 첨단공장을 보면서 이들 기업이 지역 경제를 되살릴 수 있을까 기대하고 있다. 직장인 김성무(47·대구 달서구 신당동)씨는 "9년 전 이곳은 시민들과 삼성상용차 직원들이 매일 성난 목소리를 높이다 이후 한동안 텅 빈 땅이었는데 지금은 많은 공장이 들어와 생기가 넘치고 있다"며 "규모는 작지만 알짜 기업들로, 보수도 괜찮다는 소식에 많은 구직자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이다. 동네의 자랑이 됐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은 "2005년 '파산'동이었던 동네 이름이 '호산'동으로 바뀌면서 이곳이 살아났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라고 했다.

입주 기업들도 삼성의 전철을 밟지 않고 지역 경제의 구심점이 되겠다고 했다. STX엔파코 이상두 사업2본부장은 "현재 1천억원을 이곳에 쏟아부었고 앞으로도 청정에너지 분야에 투자를 계속 할 예정"이라며 "삼성이 퇴출당하면서 지역 경제를 어둡게 만들었다면 지역 경제에 빛을 준 기업이 STX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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